허지웅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다, 섬뜩한 감정을 경험했다.
다른 글들을 읽을 땐, 타인의 가치관과 시선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관음하는 느낌이었는데,
아니! 아래 인용할 글은, 화자가 그인지, 나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의 합일을 느꼈다.
이 글은 문단 전체를 옮겨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밖에 없어. 발췌 없이 챕터를 통째로 옮겨본다.
가끔 "당신은 이 영화를 꼭 봐야 해요, 미치도록 멋진 영화거든요, 꼭이요.
꼭 봐야 합니다"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쓰다 말고 정말 그렇게 목젖이 타들어가 눈물기가 묻어나올 때도 종종 있다.
내가 적확한 시선을 유지한 기자라기보다 팬심으로 동요하는 얼치기 관객에 더 가깝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 영화의 공기로 호흡하는 두 시간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극장을 나선 뒤 앙금처럼 남은 파고의 흔적을 더듬어 정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불현듯 떠오르는 잔영에 오래전 연인을 떠올리듯 얼마나 울렁이고 있는지,
온전히 설명해내고 싶다.
오늘 누군가 대보름 소원을 물었다.
나는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보게 해달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좋은 영화를 본다는 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스승과, 연인과,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볼 때보다 보고 나서가 더 중요하다.
사유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현실의 근심을 잊기 위해 찾아보는 프랜차이즈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건 온당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신보다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할 것 같다.
2008.2
- 책 <버티는 삶에 관하여> 246, 247쪽
(허지웅 지음/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