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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비행을 발견한 날

당진, 대난지도 여행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난다.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주말 오전, 사람이 붐비지 않는 극장에서 조조영화감상을 즐겨온 생활은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됐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극장으로 향했다. 개봉 전 기대했던 영화 <이퀄스>를 봤다. 기대를 했음에도(나는 좀처럼 기대에 부푸는 타입이 아니다), 좋았다. 분위기와 메시지 모두. 지독하려면 아주 지독한 걸 좋아하는 나는, <이퀄스>를 보는 데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취해있었고, 극장을 빠져나온 후에도 그 영화의 취기에 몸이 비틀거렸다. 영화를 보기 전엔, 구름이 잔뜩 끼어 꽤 흐렸는데, 극장을 나오니 햇살은 뜨거웠고 시야는 밝았다.


영화는 감정이 억제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지독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영상미가 좋았고, 금기 위에서 아슬아슬한 사랑을 나누는 인물들은 애간장을 태웠다. 나는 영화가 건넨 사랑의 기운에 취한 데 이어, 맑은 날에 또 한 번 취해버렸다. 예술에 1차를, 자연에 2차를! 마치 술을 즐긴 사람 마냥 나는 비틀거렸다. 3차를 가야만 했다. 2차에서 끝내기에 남은 하루는 너무나 길었다. 무작정 바다로 향하고 싶었다. 차를 타고 도비도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난지도로 갈 수 있다. 소난지도와 대난지도.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난지도를 목적지로 택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휘청이고 싶었다. 가족, 연인, 친구(낚시가 목적인)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시끄러운 걸 반기지 않지만, 상황은 내 마음대로 설정할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배기둥 한켠에 엉덩이를 올려뒀다. 그 자리는 내 것! 절대 일어나지 않은 채, 바다를 조망했다. 아마 남들이 보면 사연 있는 여자처럼 느껴졌을 거다. 정말 뜨거운 날이었는데, 배가 떠나기 전엔 다리 사이로 땀 같은 게 주욱- 선을 그어내릴 정도였는데, 신기하게도 출항하지 마자 땀이 멎었다. 이럴 때 보면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내 몸 속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 자연이라는 존재. 바다의 일렁임에 몸을 맡긴 채, 나는 제대로 3차를 즐겼다. 3차는 바다의 비릿함과 갈매기들의 날갯짓과 함께였다. 그야말로 수중가무!





이십 분 정도였나? 수중가무에서 해방됐다. 나는 배에서 내리면, 늘 오른편부터 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편을 선호한다. 그쪽으로 가야 낚시장이나 해수욕장, 그리고 예약해둔 펜션 등이 있는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상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장소에 익숙한 듯, 취한 듯 걷는 걸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겐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역시나, 오른편으로 가니 사람들이 적었다. 내가 그곳에서 본 사람들이라곤, 바다낚시를 즐기는 두 명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 일가족 3명이 전부였다. 나는 바다를 향해 제멋을 뽐내는 돌들을 꾸역꾸역 밞아나갔다. 바다풍광! 내가 사랑하는 바다! 한없이 즐겼다. 서해바다인지라, 바다 가까운 곳 바위 위에 앉았더니 물이 차올라서 바다와 조금 먼 곳에 있는 평평한 바위 하나에 걸터 앉았다. 앉아보니 편했고, 나는 이곳에서 몇 시간을 노닐자, 고 다짐했다. 돌 위에 선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 한 명을 데려왔다. 책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이 얼마나 '계획된 듯한' 일인가, 싶었다. 제목처럼 책의 소재도 바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바닷물의 일렁임과 비릿한 바다내음, '진짜' 하늘빛을 지닌 하늘, 그 위를 가끔 지나가는 비행기, 바다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인 기암괴석. 이 풍광과 함께 읽어내려간 책의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막혔다. '아!' 작가가 여성인데다,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대담함! 좋은 친구를 데려왔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앉아있다 보니, 서해바다 위에는 많은 것들이 비행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행접시처럼 생긴 돌들은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비행을 시도했다. 어디에선가 돌의 마찰소리가 들려 쳐다보면, 돌들이 떼구르르 구르고 있었다. 새소리, 벌레소리, 물이 차오르는 소리, 큰 파도소리 외에, 나는 '돌들의 비행소리'를 발견했다. 이후 나는 돌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비행의 순간도 보았다. 거 참, 신기했다. 책 속의 작가를 흔들어깨워 보여주고 싶었다. 이럴 때면 홀로 여행한다는 것의 결핍을 느끼지만, 홀로 찾지 않았다면 이 세심한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을 듣고 관찰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는 배 시간 20여 분을 남긴 후, 나는 마을 쪽을 향했다. 작은 집들이 즐비해있던 곳에서, 나는 키 높은 해바라기들이 모여있는 작은 집 앞에서 감탄사를 뱉었다. 해바라기. 많은 태양을 안고 있는 집. 부러웠다. 여느 집보다 으리으리해보였다. 수많은 태양에 가득 안긴 이 집은, 행운 또한 가득할 듯 보였다. 그렇게 바다마을에 감격한 채 배를 탔다. 이곳은 다음에 오더라도 꼭 혼자 찾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 201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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