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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꽃 주는 카페 '사루'

The romantic cafe, SARU

오랜만에 만났다. 서로 좋아하고, 각자 하는 일에 바쁘고 그래서 서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우리. 한데, 내가 지금은 지방에 있는 터라 더욱이 만날 여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어엿한(?) 30대가 되었고, 서른 이후에 만난 우리는 '역시나' 성장해있었다. 이번 만남은 시간 상으론 짧았지만, 어떤 큰 일을 시작하기 전의 청사진 같은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번 만남은 '꼭' 기록해두고 싶어, 이렇게 글을 적어본다.


우리는 이태원에서 만났다. 언니의 주거지와도 가까웠고, 나는 경리단길에 가보고 싶었다. 인파를 꺼리는 편이라, 이곳 자체에 자주 안 왔었다. 한데, 이번엔 가보고 싶었다. 언니가 추천해온 카페에 끌렸기 때문이다. '꽃 주는 카페'라고 언니는 그곳을 설명했고, 꽃을 좋아하는 나(여자라면 웬만해선 싫어하진 않을거라 생각)는 '오!'를 외치며 열정적으로 동의했다.


내가 느낀 경리단길은, 작은 규모의 음식점, 카페들이 즐비하는 곳이었다. 특히, 디저트카페가 많았다. 좋았던 건, 상점 개별마다의 개성이 뚜렷했다는 점이다. 일색이었다면 '분명' 나는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페들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방문하고픈 몇 군데를 꼽아두기도 했다.


카페 '사루'는 둘러싼 숍 안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나를 매료시켰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외벽색이 인상적이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 심해의 연상케하는 색의 깊이가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하수구 주변부를 화사한 이미지로 정화시켜주는 한 송이의 싱싱한 해바라기 역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이었다. 카페 '사루'의 외관이 내게 전한 첫인상은, 고흐의 작품들을 연상케 만들었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Café Terrace, Place du Forum, Arles)'의 심상이 느껴졌던 외관! 그래서 '밤에 들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다. 아! 이곳 외관에는 실제로 반 고흐의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버리지 말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말하자.'





들어서자마자, 꽃들이 벽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의 조화였다. 정돈되지 않은 듯한 노출콘크리트의 러프함과 꽃이 지닌 온갖 아름다움의 조화. 사실, 꽃을 포함한 식물들을 제외하고는, 이 공간을 메우는 소품들은 대개 빈티지한 것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멋스러움이 살아날 것만 같은 소품들. 개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소품들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루'의 메뉴는 단출한 편이다. 핸드드립과 기계커피, 과일주스와 티, 잎차와 초코류, 두 가지 정도의 술이 전부다. 사장님께 커피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아, 저희는 단골손님께만 추천해드려요."라는 것! 살짝 민망함을 머금고 "왜요?"라고 물었고, 사장님은 "손님들 취향이 다 다르고, 저도 첫 손님의 취향은 잘 몰라서요."라고 답하셨다. 맞는 말! 그래서 나는 "아~ 맞아요, 맞아요. 그래도 추천 부탁드려요.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커피류는 쓴 맛의 묵직한 바디감이 좋아요."라며 은근슬쩍 추천을 하게끔 유도했다. 이에 사장님은 인도네시아 커피를 제안하셨다. 물론, '뜨겁게' 주문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좀 더 깊숙이 카페를 구경했다. 테이블 위, 주변 모두 각기 다른 개성들을 갖추고 있었다. 이 카페 인테리어의 특징은, 공간과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데 있다. 벽 뿐만 아니라, 천장에 매달린 꽃, 테이블 위에 올려진 빈티지풍 거울, 창문 앞을 수놓는 다양한 식물들, 이 정돈되지 않은 듯한 부조화 속 조화가 인상적인 장소였다.





커피를 들고오신 사장님. "오른손잡이이신가요?"라고 물으신 뒤 "네"라는 대답을 들은 후, 잔을 세팅하고 보기만 해도 묵직함이 배어있는 커피를 잔에 가득 따라주신다. 어머! 애정이 과하신 탓인지, 커피를 잔 이상으로 채워주신 사장님. :D 나는 좋다며, '이것 또한 추억이지'라고 생각하곤 "애정이 너무 넘쳤나봐요."라며 농담을 해댄다. 요즘 대세인 '콜드브류'도 있던데, 또 들르게 되면 마셔봐야겠다고 다짐!


커피를 마셔가며, 우리는 그간의 안부와 요즘의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쉼 없이 해나갔다. 언니는 몇 달 전, 그녀의 두 번째 자전에세이를 출간했고, 다음 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나는 언니가 좋아할 만한 그림책을 선물했고, 다행히도 언니는 기뻐했다. 그렇지 않아도, 준비 중인 책의 컨셉트가 내가 선물한 책과 일맥한다고 하여,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나로서는, 그녀로부터 엄청난 값진 선물을 받은 듯했다. 고마웠다. 언니는, 불과 한 해 전보다도 훨씬 성장해있었다. 그녀를 오랜기간 지켜봐온 나는, 그녀의 성장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왔다. 묵묵히 봐오기만 했던 나는, 이번엔 자신있게 그녀에게 내가 보는 그녀를 말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녀의 성장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1여년 사이, 수많은 경험을 한 그녀. 둘만의 이야기를 이곳에 모두 펼쳐보일 수 없지만, 그 값진 경험들은 성장통이었다. 간극이 큰 경험들로 하여금, 김진향이라는 여자는 더 진한 향기를 머금게 된 것.





그녀는 매일같이 일기와 감사의 편지를 쓴다고 밝혔다. 나는 그녀가 계획적인 인물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매일 밤, 일기를 씀으로써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들을 더 갖게 됐다는 거다. 요즘 그녀는,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규칙적이며 계획적으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로 하여금, 나 또한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고,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역시, 관심분야에 대한 공부를 좋아하지만 그것을 계획 하에 진행하진 않았다. 다소 즉흥적이며, 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서툰 나. 물론, 이번 다짐 또한 먼 미래에 대한 계획 하에 진행시킬 건 아니지만, 이번 만남으로 하여금 '공부를 집중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뜻깊은 만남의 시간이었다.





이전의 남자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친구끼리 만나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땡. 이게 보통이지 않느냐? 영화를 봐도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 일쑤고, 밥 먹고 커피 마시는 동안 나누는 얘기들도 킬링타임용들 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너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이 말을 부정할 수 없는 게,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생산적인 것들을 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생산적이라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 여행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영화나 책 등을 함께 즐긴 후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식의 활동을 하면 '특별한 추억'이 된다. 지나고 보면, 그런 작고 많은 행복의 순간들을 많이 나눈 친구들이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소중한 순간들을 위해 작지만 '노력'이라는 걸 기울였고, '함께'의 의미를 발견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나눠가졌다.


짧지만 속이 꽉! 찬 이번 만남. 서로의 생활 면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공감했고, 앞날에 대한 다짐들도 했다. 언니에게 정신이 팔려서였던지, 나는 소중한 카메라도 그곳에 두고 나왔다(다시 방문하라는 계시인 듯). 한창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사장님은 언니와 내게 세네 송이의 보라빛 꽃들을 엮은 꽃다발을 건네셨다. 각 꽃다발에는 여심을 자극하는 글귀들도 새겨져 있다. '꽃 주는 카페, 사루'! 이곳은 나의 육감을 설레게 만든 장소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한 시간. 이날의 공기 또한 추억으로 남아, 평생 내 몸 속을 흐를 것이다.


이날의 추억. Thank U. - 201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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