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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영화 <시간>의 그 장소

배미꾸미조각공원

김기덕 감독은 '헌팅의 달인'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장소 찾기에 능한 인물이다. 숨은 곳들을 잘 발견해내는 능력도 있지만, 발견해낸 공간을 자신의 영화색에 걸맞게 재탄생시키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의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보고픈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장소가 있었다. 영화 <시간(Time, 2006)> 속에서 등장한 조각공원이다. 배미꾸미조각공원. 이름도 독특한 곳이다. 물론,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왠지 예술적인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배를 타고 들어간다. 배에서 내린 후 또 얼마간을 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 바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갔었던 2012년에는 길이 말썽이었다. 어찌됐건 나는 배와 차에 몸을 싣고 그곳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공원 공기를 흐르고 있던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기독교적인 음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 그 종교 음악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풍의 음악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공원과 어울렸다.


그리고, 당연하듯 영화 속에서 인상 깊었던 '계단' 작품을 찾았다. 서해바다 위에 놓인 조각 작품들이라, 밀썰물때를 잘 맞추면 자연과 어우러진 조각공원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속 계단(조각)을 오른 남녀는, 그들 발 밑에 바다를 두었다. 그 작품의 제목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었다. 바다를 발 아래에 두고, 하늘로 향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아래에 앉는다면, 그야말로 그 순간 만큼은 천국의 순간을 맛보는 경험일테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만나볼 수 있는 조각에서는 계단이 없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서 계단이 빠져버린 것이다. 기대했던 터라, 금세 맥이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 앞을 장식하고 있는 건강한 느낌의 손 조각상은 건재했다. 다행이었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나는 꽤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실제로 갔더니, 나의 시선을 장악한 건 영화 속 작품이 아니었다. 이 공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나무'였다. 제목이 나무인지는 모르곘지만 형태는 명백한 나무다. 





그냥 사진만 찍어서 SNS에 올렸더니, 사람들은 '저 멋진 나무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저건 작품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누군가는 실망했고 누군가는 즐거워했다. 어찌됐든 나는 그 나무가 좋았다. 이 나무는 멀리서 바라봤을 때의 매력도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재미도 있다. 철제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바람을 만나면 묘한 선율을 내뿜는 작품이다. 아, 다시 보고싶다.





이 외에도 공원 내에는 사랑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엉켜' 있다. 작품들이 무더기를 이루는 게 아니지만, 내가 '엉켜있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작품들 속 오브제들이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 뿐만 아니라 부모의 그것, 동물의 그것 등이 에로틱하게 연출돼 있다. 처음 마주하면 민망함을 감출 수 없는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시간이 흘러 작품들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즐기게 될 것이다. 참고로, 나는 아주 면밀하게 아름다움을 '관찰'했었다.


조각작품을 좋아한다면 가보길 권한다. 김기덕 감독이 선택하는 장소들은 독특한 동시에 아름답다. 이것은 내가, 김기덕 감독의 작가성을 높이 평가하는 주 이유들 중 하나다. 이곳은 사시사철 아름다울 것 같다. 매순간 움직이는 자연 위에 놓인 작품들이기에 풍광과 함께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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