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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

농밀한 서스펜스의 향연(香煙)

필자는 김지운 감독의 팬이다.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잘 간파하는 능력과 그 것을 캐릭터에 잘 녹여낸다는 점, 두 번째 이유는 어떠한 영화이든지간에 수려한 미장센을 펼쳐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영화라는 창작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극(極)'으로 펼쳐보이는 에너지에 있다. 이 에너지에는 열정과 용기가 배어있다. 하지만 그것이 억지스럽거나, 과장된 느낌을 전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유려하다. 유려함. 스릴러, 범죄, 공포, 느와르라는 장르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이지만, 그의 작품들 속에는 장르적 클리셰를 뛰어넘는 미학이 서려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느끼는 재미 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갖추고 있다.



<밀정> 역시 그러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속에서 뒤틀린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 조국에 등져버린 이와 지켜내려는 이와의 대립과 화합. 극단의 상황 위 극단의 캐릭터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상황 설정만으로도, 보는 이들에게 긴장감을 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긴장감의 상황 속에서 그 누구보다 긴장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은 이정출(송강호)이다. 그는 스크린 안팎, 그리고 스스로도 자기경계를 해야만 하는, 늘 날을 세운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정출을 경계한다. 정출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직업,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정출은 한 명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크게 두 명의 그가 존재하고 있다. 조선인으로서의 그와 일본경찰로서의 그. 정출은 이들 둘을 한 몸에 품은 채, 그렇게 자신의 딜레마와 상황을 견뎌나간다. 물론, 정출 외에도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와 그에 따른 긴장을 놓지 못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스펜스를 경험한다.



제목에 충실하게, 영화는 끝까지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같은 심리는 편해야 할 좌석을 좌불안석으로 만든다. 캐릭터들과 덩달아 누군가를 의심하게 만드는가하면, 양극단의 캐릭터가 화합의 몸짓을 펼칠 때면, 또 다른 밀정에게 들키지는 않을지, 나아가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것. <밀정>의 묘미는 이 '서스펜스'에 있다. 거기에, 아픈 상황을 다룬 시대극이 전하는 공감할 만한 정서들도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요소이다. 딜레마 위에 놓인 정출. 외롭고 괴로운 마음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라는 배우는 그 상황도 '위트있게' 소화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전한다. <우아한 세계(The Show Must Go On, 2007)> 속 그의 모습이 연상됐다. 한국형 스파이영화라는 점에서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 2015)>가 연상됐지만, 캐릭터 내면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정출이 한 수 위다.



영화 <밀정>이 끝까지 서스펜스의 힘을 이끌고 올 수 있었던 힘은 '캐릭터'에 있다. 개성 뚜렷한 캐릭터 설정, 그들이 밀고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은 관객들을 '편한 염탐자'들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감정선의 조율에 능한 감독 김지운. 그의 연출력은 이번 영화에서도 제대로 발휘됐다. 또한, 많은 시대극들의 한계로 볼 수 있는 '캐릭터의 겉만 핥는' 것이 아닌, 캐릭터들의 윤리의식이 짙다는 점 또한 <밀정>의 질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부분이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들은 화려한 액션, 총·칼질이 오가는 장르라 할지라도, 윤리의식과 의리를 지켜내는 캐릭터들이 먼저 연상된다. 그래서 영화를 감상한 후 느껴지는 온도는 그 어떤 휴먼드라마들보다 따뜻하다. 이 부분들을 미루어보면, 김지운 감독은 끊임없이 사람의 내면을 탐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냉정과 열정의 훌륭한 조율자. 그의 차기작은 또, 얼마나, 가슴을 후벼팔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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