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의 팬이라면 :D
페르난도 보테로의 팬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책에서는 보테로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보테로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행복과 사랑의 감정이 스며든다.
작품들은 보테로가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안고 있다. "나는 항상 예술이란 삶의 잔인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아름다움과 존엄함의 도피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테로의 말이다. 따라서, 그가 그려낸 그림들의 색채는 다양하고 밝으며 작품들을 메우는 사람들(보테로족)들은 풍만하고 둥글다. 그 어떤 잔인한 상황들도 보테로의 작품들에서는 대체적으로 밝게 묘사된다.
그는 인물들에 볼륨감을 부여함으로써, 감상자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한다. 물론, 정물, 풍경, 동물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지만, 특히 인물화(그중에서도 여자)에서 볼륨감이 두드러진다. 재미있는 것은, 풍만하고 볼륨감이 있지만 그녀들이 관능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보테로가, 여자를 통해 에로티시즘을 추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보테로는 여자를 그림으로써, 귀여움과 다산, 풍요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전통적 남미 문화권의 아름다운 여성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림을 관람할 때, 어디에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비롯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게는, 풍만한 형태에서 풍겨나오는 삶의 즐거움입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형태의 풍만함을 만들어 내는 문제에 매달렸지요."
대체로 그의 인기는 크게 두 가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보테로 볼륨'이라 이름 붙일 만한 독특한 스타일이고, 두 번째는 보테로 그림이 담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남미 문화이다.
가장 콜롬비아적인 화가인 그는, 자신만의 색을 갖고 올곧게 걸어왔다. 그의 시선에 포착된 모든 것들은 볼륨감을 지닌다. 하지만 결코 무겁거나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뚱뚱하지만(인물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과 뺨, 단추 구멍만한 눈과 입, 거의 보이지 않는 짧은 목, 눈보다 조금 큰 귀, 코끼리 다리를 지니고 있다.) 풍선처럼 가벼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가 그려낸 오브제들을 볼 때면, 양 팔로 가볍게 안아보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다.
보테로는, 다양한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그려낸 엄청난 양의 작품들만큼이나 엄청난 소재들이 다뤄진다. '남미'하면 빠질 수 없는 음악과 춤, 그리고 투우와 서커스를 즐겨 그렸다. 보테로의 그림들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소재들 역시 역동적인 활동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심지어 그는, 어릴 적에 직접 투우를 배우기도 했다. 보테로에게 투우는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보여 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소재였다.
한편, 역사적 상황과 인물도 그렸던 보테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보테로스럽게' 그려진다.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말이다. "독재자를 그릴 때, 나는 색깔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어떤 면에서 이건 사랑의 행위와도 같죠. 회화는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그림을 그렸던 멕시코 화가 오로스코의 방식과는 다릅니다. 그가 그린 작품들에서는 붓질을 통해 증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각각의 붓 터치는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보테로가 연인과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사랑한다. 감상하고 있으면, 내면의 평화가 밀려온다. 여유롭고 느긋한 시골 생활 중인 그들을 보면 힐링되는 기분이다.
물론, 보테로의 볼륨감 넘치는 그림 스타일로 인해, 그가 삶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그리는 화가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조국 콜롬비아의 마약과 폭력, 납치와 학살, 고문과 죽음 등 역사의 앞므을 반영하는 작품들도 더러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유머와 여유는 사라지고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들도 있다.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시리즈가 그렇다. 이 작품을 통해 보테로는, 이라크 전쟁의 산물인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잔혹함을 고발한다.
보테로의 팬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유는, 다양한 보테로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도 있지만, 저자 이동섭의 위트있는 해석 때문이다. 보테로의 밝은 작품들 만큼, 그에 대한 해석 또한 재미있고 감성적이다. 가령, 아래와 같은 글귀들이 그렇다.
보테로의 <앵그르, 피에로 델라 프렌체스카와의 저녁식사, 1968>를 해석한 글이다.
'이 작품을 보자마자, 보테로가 꾸었던 행복한 꿈을 그린 것이라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보테로의 그림 속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마친 세 하가. 프란체스카는 과일, 앵그르는 와인과 치즈를 디저트로 하고, 보테로는 담배를 피우며 웨이트리스가 가져오는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저녁 식사값은 가장 나이든 프란체스카보다, 아무래도 가장 어린 보테로가 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자리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기념으로 보테로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두 거장을 초대한 자리처럼 보이니까.'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문체도, 감상도 좋았고 보테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보테로와의 인터뷰글도 인상적이다. 소장 가치 다분한 책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