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속 진심을 알고 싶은 우리들

르네 마그리트의 명언, 그리고 그에 대한 에세이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을 감추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바라보는 것 뒤에 감춰진 것을 보고싶어 한다.


Everything we see hides another thing,

we always want to see what is hidden by what we see.


- 마그리트



마그리트_대전.jpg



마그리트는 강박적으로 시선과 얼굴을 지운다.

꽃다발, 비둘기, 사과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아예 얼굴을 나무판으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얼굴에 헝겊을 뒤집어 씌워 완전히 사실을 차단하기도 한다.

<바다의 남자>는 까만 나체의 몸통에 얼굴은 실내 나무장식의 한 조각인 듯한 사각형의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

<삶의 발명>은 검은 드레스 검은 머리의 여자 옆에

온 몸을 마치 무슬림 여인의 부르가 같은 것을 뒤집어 쓴 사람의 형상이 있다.

<연인들>은 복면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얼굴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중략)


그것은 가면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상대에 대한 욕망의 시선을 숨기는,

그리하여 더욱 강렬하게 상대를 매혹시키는 가장 무도회의 검은 가면이다.

라캉은 인간만이 가면 뒤에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 책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107쪽에서

(박정자 지음, 에크리)





우리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존재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숙명이기에, 타인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온전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나 보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외관이 아닌, 좀 더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관계라는 물리적인 것 이상의 것, 무형의 가치에 의해 다져지는 마음이라는 것이 오가야

'진짜 관계맺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진심이 오가는 관계.

거죽에 씌인 거짓이나 과장의 꾸밈이 아닌, 진짜 속내를 내비칠 수 있는 관계.

사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이것들이다.


내가 진심을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게 진심을 내비쳤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오늘, 내게 이 질문거리를 던진 인물은 르네 마그리트다.


부쩍 추워진 요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진심을 비출 수 없는 타인이라면,

내게 진심을 비출 수 없는 타인이라면,

관계맺기의 의미가 있을까?


물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또한 노력의 산물이지만.

적잖은 나이가 되니, 그에 대한 알아차림의 속도가 조금은 빨라진 것 같다.


우리가 타인의 감춰진 것을 알고 싶은 것이 우리의 진심이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역시, 감춰진 것을 알아내는 건, 평생의 숙제이자 인간에게 주어진 최난이도의 과제다.


- 2016.10.28. 시월의 마지막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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