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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선희>

대체 어느 누가 선희를 '제대로' 알까?



영화 <우리 선희>는, 홍상수 감독 영화들 중 가장 웃긴 작품이었다. 선희를 둘러싼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생각. 이는, 감독이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말해왔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다. 선희와 얽힌 남자 셋은, 옛 연인 문수와 선배 재학, 그리고 최교수다. 선희는 유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최교수를 찾는다. 그 계기로 우연히 문수와 재학을 만난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우연'은 사건의 시작이 된다. 사실,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네 현실에서도 우연이 지니는 힘은 막강하다.


세 남자는 선희를 '제 나름대로' 평가한다. 그들의 평가는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세 명의 남자가 보는 선희의 모습은 비슷한 동시에 다르다. 우리는 과연 선희라는 한 명의 여자만을 만난 게 맞는 걸까? 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들이 왜 이렇게나 다른지 모르겠다. 제 나름대로 '파고 파고 또 팔 줄 아는' 남자들인데, 왜 선희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지 못할까? 꽤 오랜기간 함께했던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희를 잘 모른다. 문제는, 선희 또한 자신을 모른다는 점이다. '파고 파고 또 파야만'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들. 하지만 이들 중, 정작 깊숙이 자신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있을까?



선희에 대한 이미지는, 일치와 불일치를 오간다. 하지만 그 간극들은 두루뭉술한 이미지들이다. 예쁘다, 또라이 기질이 있다, 착하다, 이상하다, 등의 '말'들. 이 말들은, 비단 선희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한 번 쯤은 들어본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선희가 아닌데, 마치 영화를 보며 '내가 선희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우리' 선희다. 선희가 아니어도 내가 선희가 된 듯한 기분. 영화 속 선희처럼, 나 한 명을 두고 다른 남자들도 이같이 같은 듯 다른 생각들을 하는 건 아닐까,라는 짐작도 해봤다.


사실, 사람을 정의내린다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따라서 누구와 함께 있느냐,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시선 역시 변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타인 역시 변한다. 변하는 개체들의 생각은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듯, 사람도 변한다. 관계 역시 상대적이다. 따라서 한 사람을 정의, 평가내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는 단지 보여지는 이미지에 대해 말을 할 뿐이다. 이미지와 말. 이 두 가지 모두는 실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허상이다. 그것들은 머무르지 않는다. 따라서 쉽게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평가(이미지화)하고, 그에 대한 말을 해대기 일쑤다. 우리가 반복하는 것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반복'. 이것 또한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꾸준히 다뤄지는 소재다.



홍상수 감독은 <우리 선희>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사람에 대한 평판에서) 의견 일치의 경우가 불일치한 의견으로 서로 충돌할 때보다 더 위험한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충고란 것들이 하나의 기성상품처럼 충고자들의 입 사이를 떠돌면서 사람들 몸에 억지로 씌워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정리하고 정의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의 그런 정의 내리기가 또 우리의 한계가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선 우리의 이런 면을 좀 과장되게 드러내보였다."고 말이다. 감독이 말한 '의견 일치'라는 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미지)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변화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상품이 되고 만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한때는, 변치 않는 확고한 자아가 추앙받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따라서 사람의 자아도, 그리고 타인의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인생의 '진리'가 위트있게 다뤄진 작품이 <우리 선희>다.


선희를 둘러싼 남자들의 대화 흐름처럼 계절도, 세월도 흐르고 또한 변한다. 우리가 반복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이 된다. 말은 고상하고 실상은 그에 못 미치는 것 또한 인생이다. 파고 파고 또 파도 좀처럼 예상할 수 없는,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또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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