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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기인형>

우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있다. 그의 영화들은 모두 좋다. 그중에서도 <공기인형>은 '나만의 베스트 3'안에 드는 작품이다.


공기인형은 성욕해결 대용품이다. 히데오가 구매한 공기인형 '노조미'는, 홀로 살아가는 그의 파트너가 되어준다. 노조미는 공기인형의 주 역할인 성욕처리 뿐만 아니라, 외로이 살아가는 히데오와 소통 대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느날 노조미의 몸은 깨어난다. 그녀는 옷을 입고 외출한다. 인간세상에서 그는 수많은 것들을 알아간다. 그녀의 존재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 세상 모든 것은 호기심 투성이다. 그러던 그녀는 어느 비디오 가게의 점원이 된다. 그리곤 점원 '준이치'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이후 노조미의 삶은 크게 둘로 나뉘게 된다.



노조미가 생을 부여받은 시간과 히데오의 인형이 되는 시간으로 말이다. 노조미는 히데오에게 반한 순간부터, 인형이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갖고 만다. 준이치와의 사랑을 쌓아가는 노조미는, 준이치 역시 자신과 같은 인형의 시스템인줄로만 알고 큰 사건을 치르고 만다.


'마음'이 생겨버린 노조미



무생물의 존재가 생을 부여받으면서 갖게 된 '마음'. 하지만 이 마음, 사람이라고 '잘' 다스리고 있을까? 영화는, 마음을 부여받은 인형의 시선을 통해 인간사의 문제점들을 꼬집는다. 마음을 가졌기에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됐지만, 노조미는 결국 슬픔을 겪고 만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는 외로움과 그로 인한 소외로부터 비롯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있지만, '따듯한 마음'들은 부족하다. 가족임에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들이 부족할진대, 마음 터놓고 대화할 친구는 얼마나 사귀기 힘들겠는가? '사랑은 사치'라며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는 히데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히데오: 부탁이 있는데, 예전의 인형으로 돌아와줘. 일반적인 그냥 인형으로.

노조미: 마음 같은 거 없을 때가 좋았어?

히데오: 맞아, 피곤해. 그런 거 귀찮아서 널 선택한 건데.


요즘엔, 타인과의 소통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진대, 우리는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을 거스르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노조미가 처음부터 갖지 못했던 것처럼 '텅 빈' 것은 아닐까? 노조미가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살이는 말이지, 태어난지 하루나 이틀이면 죽어버린다네. 그래서 몸 속은 비어있고 소화기관도 없지. 대신 알만 가득 차 있어."


우리는, 하루만에 죽지만 알이 꽉 찬 하루살이보다도 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 속 할아버지의 대사들이 바로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일침이다. 영화에는 노조미 외에도 사람들의 상처들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사람들. 주변을 둘러봐도 그 누구 하나 없는 사람들. 이 풍경들을 보며, 마치 거울을 본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 관객들도 있을 성싶다.


공기인형의 존재가 그러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타인의 '숨(마음)'이 필요하다. 들숨과 날숨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듯, 타인과의 관계가 인간사회를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로운 사람들



이렇듯, 영화 <공기인형>은 인간사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스스로를 뉘우치게 만든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껍데기만 본다면 인형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그들이 갖지 못한 내면, 즉 마음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소통만이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삭막해진 요즘,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메시지를 담은 작품 <공기인형>. 이러한 휴머니즘을 끊임없이 말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래서 필자는 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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