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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有]
영화<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사랑의 본질에 대한 홍상수식 탐구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작품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개봉했다. 전작 이후 1년 여만이다. 그의 영화는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1년에 한 번 꼴은 그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제작에 큰 시간을 들이지 않는 감독이기도 하고, 다뤄지는 풍경 및 소재들도 일상적인 것들이기에, 그의 영화는 친근하다. 실제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도 그의 영화는 반복되는 상황 설정을 통해 처음 만난 작품이지만 관객들을 철저하게 익숙함에 물들인다. 끊임없는 반복, 하지만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간의 차이. 우리는, 홍상수 감독의 익숙한 반복 패턴 속의 약간의 변주를 발견하기 위해 그의 영화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감독 고유의 작가성에 중독돼있지만, 그래서 이미 그 맛을 예상하지만, 또 다른 신선한 양념들이 있기에 감독의 팬들은 열심히 극장으로 향한다.


이번 영화 역시 '반복'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의 '차이'라고 볼 수 있는 소재는 말, 이미지 등의 '관념'이다. 관념과 통념은 '이미지'다. 외피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 이미지라는 걸 중시 여기는 성향이 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를 '조금 아는' 3자들이 보고 느꼈던 시선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씌운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상대는 '이미 겪어본'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그 영향에서 우리는 완전히 벗어나기란 힘들다. 사실, 필자 역시 선입견과 소문 등에 철벽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타인의 '말'을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덧씌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갖고 있던 타인에 대한 '이미지'에 힘을 가한다. 인간이란 그렇다. 타인의 영향을 받고,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선입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민정'이다. 영수와 연인 관계인 그녀는, 영수에게 '술을 자제하며 마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술은 위험한 것이라는 관념 때문에 그녀는 술을 좋아하지만 절제한다. 그러던 그녀를 둘러싸고 이상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영수의 친구, 중행은 영수에게 '민정이 다른 데서 술을 많이 마시고 다닌다'는 말을 옮긴 것이다. 영수는 믿지 못한다. 매일 자신과 만나고, 자신의 집에서 잠까지 자는 그녀가 그럴 리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수는 중행의 말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중행은 자신만 본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민정의 술자리를 목격했다면서 '이미지를 실체화'한다. 이제 영수에게도 민정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되고만다. 그 소문 하나만으로 영수는 민정을 의심하고, 급기야 민정은 영수에게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자'고 통보한다.



이후로, 영수와 민정의 시간은 각기 다르게 흘러간다. 이는, 홍상수 감독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만의 코드다. 시간의 방향과 부피를 비트는 것. 모두에게 동등한 시간이 주어짐은 사실이지만, 개인에 따라 흘러가는 속도나 방향, 그것이 전해주는 크기는 다르다. 영수의 시간은 민정을 쫓기에 바쁘다. 그는 직접 민정의 행동을 봐야만 했다. 자신이 보지도 못한 소문에 휩싸여 민정과 헤어지게 된 사실 때문에 힘들어한다. 친구들의 말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의 이미지(환상)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민정의 시간을 보자. 그의 시간을 보는 관객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이유는, 그녀의 정체성까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민정은 자신이 쌍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전에 자신을 만난 적 있다는 남자에게 '전혀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가 카페에서 읽는,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처럼, 그녀는 계속 변신한다. 관객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속 남자들도 그녀의 진술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민정은 '그녀 자체'가 된다. 본질이 된느 것이다. 이제 그녀를 둘러싼 소문이나 지나간 시간들은 더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된다. 심지어 '민정'이라는 이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결국 영수와 민정은 재회한다. 하지만 영수는 민정을 민정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영수는 과거의 민정과 이별한다. 민정의 실체가 누구인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지만, 어찌됐든 소문이나 관념에서 자유를 찾은 후, 두 남녀에게는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제목의 띄어쓰기만 봐도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예상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은, 당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될 수 있고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자신'이다. 하지만, 당신을 둘러싼 것들, 그러니까 소문이나 선입견 같은 것들은 당신과 분리된 것이다. 그것들은 진짜 당신이 아니다. 그저, 당신과 분리된 어떤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꽃의 시인, 김춘수가 떠올랐다. 본질을 들여다볼 것. 그것들을 부르는 호칭이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본질에 집중할 것. 그랬을 때, '진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 이미 좋은 관계를 위해 지켜야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지키지 못해왔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여느 영화들이 그래왔듯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역시, 우스꽝스러운 상황 연출과 그에 맞서는 인물들의 대사 때문에 연신 웃어댔다.


김주혁, 이유영은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는 처음 만난 배우들이다. 김주혁은 꽤나 어울렸지만, 이유영은 홍 감독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서진 못한 듯하여 아쉽다. 어찌됐든, 이번 영화는 여느 작품들보다 로맨틱했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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