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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작품 <옥희의 영화>


<옥희의 영화>는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돼있다. 홍상수 감독 영화들의 큰 특징은, 같은 듯 하지만 다른, 다른 듯 하지만 또 비슷한 것들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감독의 작품들을 한발짝 물러서서 보면, 또한 반복된다. 같은 배우들이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하고, 다른 작품들에서 배우들은 비슷한 대사를 읊는다. '아름답다' '예쁘다' '너밖에 없어' '사랑해' 등의 대사는, 홍상수 감독 영화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들이다. 반복과 차이는, 홍상수 감독의 '코드'다. 그렇다면, <옥희의 영화>에서는 이 코드들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단편 <주문을 외울 날>이다. 독립영화 감독 '진구'는 자신의 GV에서 한 관객으로부터 난처한 질문을 받는다. 결혼 후 제자와 외도를 한 진구의 사랑담을 확인할 수 있는 단편이다.


두 번째 단편 <키스 왕>에서는 진구의 학과시절을 보여준다. 진구가 옥희에게 접근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진구의 스승은, 시간강사 '송 교수'다. 알고보니, 송 교수와 옥희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형태였다. 옥희는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옥희가 더 좋아하는 사람은 송 교수로 보인다.



세 번째 단편 <폭설 후>에서는, 얽힌 관계의 세 남녀가 한 자리에 모인다. 폭설 후, 유일하게 송 교수의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진구와 옥희다. 이들 셋은 서로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삶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나눈다.


마지막 단편 <옥희의 영화>에서는, 옥희가 제작한 영화가 소개된다. 옥희는 동시에 만났던 진구와 송 교수와의 사랑담을 나란히 이어붙인다. 동시간·장소에서 겪은 다른 남자와의 에피소드는 비슷한 듯 다르다. 전체에서 보면 비슷하지만 상세하게 들여다보니 다른 그림. 이것이 '인생'이다. 옥희는 영화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란 게 뭔지 끝내 알 수는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송 교수와 진구의 모습이 닮았다는 점이다. 송 교수처럼, 진구도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송 교수의 과거는 진구의 현재와 또 묘하게 비슷하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반복과 차이 코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이미지 외의 텍스트도 합세한다. 바로, 엔딩 크레딧의 활용이다. 각 단편들마다 배우진의 이름이 화면을 꽉 메우는데, 특히 마지막 단편 <옥희의 영화>에서는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그리고 다시 이선균, 정유미…'식으로 크레딧이 장식된다. '그리고'에서 반복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계절이 돌고돌듯, 인간사 역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개별적이지만 전체적인 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면 시간마다 끼니를 챙기고 각자의 일을 한다. 이러한 매일이 쌓이면서 인생 전체가 된다. 이 메시지가 홍상수 감독의 다양한 영화들에서 끊임없이 반복 강조되는 주제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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