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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죽음이 선사한 '삶의 가치'


'고양이'가 제목에 들어가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귀여운 모습들이 잔뜩 등장할거라는 단편적인 기대를 안고 감상한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하지만 이 영화는,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올해 서른, 우편배달부로 근무하는 나는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곧 죽음을 앞둔 그의 앞에,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사신, 혹은 악마(본문에서 필자는 이렇게 지칭할 것)로 불리게 된 그는 나에게 '위험한 협상'을 제안한다. 나의 수명을 하루씩 연장시켜주는 대신, 세상의 어떤 것 하나씩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없앨 대상은, 악마가 정한다. 악마는, 세상에서 휴대폰, 영화, 고양이를 없애자고 제안한다.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가정하면, 되레 우리는 그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 필자가, 악마를 악마라 지칭한 이유는,  단순히 그것들만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대폰, 영화, 고양이들이 사라지면서 나와 얽힌 모든 추억들까지 무효화시킨다. 우리의 추억에는 그것을 공유한 사람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휴대폰과 얽힐 사람들, 영화, 고양이와 얽힌 사람들과 순간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휴대폰과 얽힌 사람은 전 여자친구다. 그녀와는 잘못 걸린 전화 때문에 연을 맺는다. 그녀와 나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휴대폰,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와의 연인 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폭도 좁았을 게 분명하다. 우리는 매일같이 휴대폰을 끼고 살지만, 영화 속 '나'가 그랬던 것처럼 긴밀한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많은 번호가 저장돼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연락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실제로 휴대폰은, 우리의 생활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물건이다. 그것이 없다면, 타인과의 접촉이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휴대폰이 있어도 연락조차 않는 대상도 있겠지만, 멀리 떨어져있는 타인과 나를 연결지어줄 중요한 물건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음으로 악마가 없앤 것, 영화. 영화는 왠지 없애도 삶에 큰 지장이 없을 성싶다. 하지만, 영화 속 '나'는 영화에 얽힌 깊은 추억이 있고, 그로 인해 얻은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대학생 시절 영화광인 친구와 밥을 먹게 된다. 그는 나에게 매일같이 DVD를 빌려주며 영화에 대한 영감을 심어준다. 그럼으로써 둘은 친구가 된다. 아주 깊은 관계는 아닌 듯 싶지만, 영화라는 공통 관심사로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온 그들이다. '삶보다 예술이 중요하냐'는 악마의 질문에 나는 망설인다. 하지만 예술(영화)이 이어준 연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필자 역시 영화광이다. 독서, 그리고 음악도 좋아한다. 사람은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이 있다. 이것을 '코드'라고 부른다치면, '코드 맞는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서로의 활동과 취향을 공유하는 등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건 추억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운다. 동시에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야기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마지막으로 악마가 없애겠다고 한 것은 고양이다. 고양이? 왜 하필 고양이일까? 고양이와 나는 '가족'과 얽힌 사연이 있다. 어릴적, 양상추 박스 안에 버려진 고양이를 주워다 키운 이후, 고양이는 가족이 된다. 나에게 있어 고양이는, '가족'과 다름 아니다. 가족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나는 악마에게 말한다. 고양이만은 없애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죽음 앞에 선 남자가 삶을 성찰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다룬다. 결국, '나'는, 악마라 불렀던 대상에게 "고맙다"라고 말한다. 왜 고맙냐고 되묻는 악마의 말에 나는 답한다. "세상에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해줘서."라고…. 맞다. 우리는 늘 무언가의 이별 앞에 서야만 그 무언가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것이 미련이건 집착이건, 어떠한 심리상태이든지간에,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몰랐던 자신에 대해, 과거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현재에 대해 슬퍼한다. 그야말로 '후회는 때 늦은 것일 뿐'이다.


나는, 생명연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생애 중요한 것들은 없애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그가 악마에게 했던 말은 '죽음의 가치'를 되짚어준다. 죽음 이전에 우리가 간과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듦으로써, 현재의 가치를 인지시켜준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슬퍼해줄 사람이 있을까?' 이는 허튼 생각이다. 나와 얽힌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의 대상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살면서 '관계'를 중요시해야 한다. 잊지 말자,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그들과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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