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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해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해원은,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했던 여주인공 중 가장 바쁘고, 또 혹사당한 인물 같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속에서 과연 해원은 그녀 자체만으로 존재했던 걸까? 의구심이 든다.


감독의 영화에서 늘상 그래왔듯,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각종 소문에 휩싸인다. 단지 말을 아끼고, 비밀에 부쳤을 뿐인데 해원을 둘러싼 진실 아닌 이야기들이 공중에 떠다닌다. 우리는 '조금' 안다. 해원을 둘러싼 소문들이 그저 소문에 불과함을 말이다. 해원의 부모가 엄청난 부자라는 소문을 우리는 확인하지 못한다. 소문에 휩싸인 해원 엄마의 포르쉐 이야기는 영화에서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해원의 가족사 일부를 엿봤을 뿐, 그녀의 전체를 알지 못한다. 물론, 해원은 경제적으로 딱히 힘들어본적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부자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해원은 남자친구 몇몇을 만나고 그들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헤픈 이미지를 입는다. 해원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다)하는 친구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헐뜯는다. 그로 인해, 해원과 교제 중인 성준은 해원을 의심한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배경은 서촌과 남한산성이다. 사직단 일대와 남한산성의 걷고 오르는 과정에서 해원은 비슷한 동시에 약간의 차이를 경험한다. '사직동, 그가게' 앞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에게 해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제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해원은 자신이 너무 드러나는 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너무 드러내지 않았더니 진실 아닌 소문이 그녀에게 '거짓 이미지'를 입힌다. 그로 인해 해원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제 3의 여자로 비춰진다.



이 영화가 '해원'이 아닌 '누구의 딸도 아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란 너무 피곤하다.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은 몸체는 하나이지만 정신은 다양하다. 또, 그 다양성은 상황에 따라 무수해질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도 자기자신을 온전히 모른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자신을 명백하게 표현하고 드러낸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과연 해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러닝타임 내내 해원이 빠지는 공간이 없지만, 우리는 끝까지 해원을 모른다. 그저 다양한 소문과 몇 가지 정황들로만 그녀의 윤곽(이미지)만을 파악했을 뿐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촌의 여유로운 풍경들이 그려진 데 있다. 사직단, 사직동그가게, 도서관 등은 필자가 좋아하는 장소들이다. 그 풍경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필자에겐 큰 흥미 요소였다. 이 영화를 보며 겁났던 건, '암묵' 역시 위험 요소라는 것을 재인식하게 된 점이다. 나도 모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건 실로 끔찍한 일이다. 조심해도 안 되는 상황들은 두렵지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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