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우주의 크리스마스>


인간의 타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그러하듯, 삶 또한 크게 보면 원형적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궤도는 인간사 그 자체다. 그 과정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그 차이는 멀리서 보면 그렇게 큰 것도 아닐테다.


<우주의 크리스마스>는 그 맥락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 같다. 이 영화에는 '성우주'라는 동명의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엄마를 여읜 후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서른여덟의 우주. 그녀는 고향에서 자신만의 카페를 준비한다. 우주가 열려는 카페의 옛 공간은 골동품 가게였다. 우주는, 그 가게의 손자와 연이 있는 스무살 우주를 알게된다. 그리고 골동품 가게에 추억이 서린 물건을 되찾기 위해 방문한 스물여섯의 우주도 알게된다. 세 명의 우주들은, 이름 뿐만 아니라 처한(혹은 처했던) 상황마저 닮아있다. 그들은 같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다른 세대의 인물이지만, 같은 운명에 처한 세 여자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가장 먼저 운명을 경험한 서른여덟의 우주가 다른 우주들의 본보기가 된다. 스물여섯과 스무살의 우주들의 미래가 서른여덟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서른여덟의 우주의 시점이 주가 되어 그녀가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과거 회상의 풍경들은, 현재의 우주들의 상황들로 전개된다. 즉, 추억이 가시화된 것이다.


서른여덟의 우주는, 과거에 자신이 행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때늦은 후회 뒤에는 미련이 남게 마련이다. 현재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아픈 추억만을 갖고 있지만, 현재 그 상황에 마주한, 그리고 마주하게 될 후세대 우주들에게는 미련을 남겨주고 싶지 않은 게 서른여덟 우주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다른 우주들에게 미래를 확정시키지는 않는다. 결정에 대한 선택권은 스스로가 하도록 만든다. 멘토로서의 조언만 건넬 뿐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앞날을 격려한다.


필자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잔잔하게 흘러가는 풍경들이 좋았다. 영화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소재는 '운명'이지만, 필자는 이 영화에 은은하게 배어있는 '관계'에 대한 메시지가 좋았다. 우연히 만난 비슷한 타인과의 관계.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확고한 틀 같은 강직함이 느껴지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부드럽고 따듯했다. 그래서 좋았다. 오랜 기간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둥근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는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