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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이 찾은 그 찻집 ‘사직동 그가게’

영화<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배경이 된 찻집

서울에서 티베트 향을 느끼고 싶다면 ‘그가게’로 가라



요즘,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재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의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얻는 재미와 교훈은 다양하지만, 그들 중 내 마음을 사로잡는 큰 요인들 중 하나는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감독의 정확한 취향은 단언할 수 없지만,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토속 색이 물씬 풍기는 공간들을 밞고 뛴다. 캐릭터들은 어디론가 떠난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길에서 삶을 배운다. 강원도, 경주, 제천, 통영, 제주도 등 비교적 자연이 덜 훼손됐거나 역사가 숨쉬는 곳들이 홍상수 감독 영화들 속 주 배경으로 선택된다.


하지만, 늘 멀리 떠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이 배경지가 될 때엔 옛 서울의 모습들이 가득한 종로 일대가 배경이 된다. <북촌방향>,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 <자유의 언덕> 등의 영화들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익숙한 공간들이 스크린 속에 등장할 때면, 도처에 널린 아름다운 곳, 것들을 놓쳤다는 점에 반성하게 될 때도 있다. 같은 장소도 다르게, 혹은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의 혜안은 언제나 나를 자극시킨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거나 특이하다고 여겨지는 곳들은 메모해둔다. 이번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거듭 등장하는 ‘사직동 그가게’라는 곳을 찾았다. 사직단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사직동 그가게’와 ‘사직동 짜이집’ 두 군데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영화에서 비쳐지는 ‘사직동 그가게’는 사실상 영화 속 캐릭터들이 차를 마시는 공간은 아니다. 그들이 차를 마시는 공간은 ‘사직동 짜이집’이며, ‘사직동 그가게’는 티베트 난민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소개 및 판매하는 상점이다. 상점 앞에는 ‘록빠(Rogpa)’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 돕는 이’를 의미하는 티베트어다. 록빠는,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NGO 비정부 단체로, 난민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국내에서는 록빠 2호점인 ‘사직동 그가게’와 ‘짜이집’이 슬픔을 겪고 있는 티베트 난민 사회의 가교 역할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영화<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찻집(사직동 짜이집)을 들르기 전, ‘사직동 그가게’를 둘러봤다. 수공예를 하며 가게를 지키는 이들이 있었고, 허브티 등 티베트의 다양한 차 종류와 오일, 수공예품, 액세서리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다양한 현지·수공예품이 판매되고 있는 '사직동 그가게'



기대했던 ‘짜이집’ 앞에 섰다. 영화에서 해원이 책을 고르고, 차를 마셨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작은 규모의 가게이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명확히 드러내는 장소였다. 샛노란 페인트로 채워진 외벽에 햇살이 드리워져,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마치, 남프랑스의 강렬한 햇볕과 햇살이 이곳을 조명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영화에서 해원의 대사가 떠올랐다. 가게 주인이 책값에 대해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라고 했더니, 대답으로 그녀는 “그러면 제가 너무 드러나잖아요.”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게 중고책 장터’라고 해서 책들이 판매되고 있고, 수익금은 티베트 어린이도서관에 기부된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책값이 기부금이 된다고 했더라면, 해원은 책들을 구매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그녀에 대해서도 우리가 더 잘 알게 됐을 것이고…….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티베트 향이 온 몸을 휘감았다. 확실히 ‘사직동 짜이집’은 이색적인 장소다. 특유의 색뿐만 아니라 향까지 존재하는 곳이라, 한 번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은 이들이라면 거듭 방문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랄까?


두유짜이를 주문했다. 짜이집이니, 짜이를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메뉴가 나오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메뉴에 정성이 가득 담기기도 한 듯 했는데, 만든 메뉴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아 다시 만들어주겠다는 말까지 들으니 가게의 선함이 배로 느껴졌다. 다양한 짜이는 물론, 인도의 전통 아이스음료인 라씨(Lassi)도 만나볼 수 있다. 그 외 간단한 커피와 티들도 있는데, 확실히 다른 찻집에서 만나볼 수 있는 메뉴들과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도 식사 및 디저트로 커리와 도사를 주문할 수 있다.



두유짜이



두유짜이의 풍미는 깊었다. 여느 카페에서 맛보던 짜이라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닌데, 맛보는 순간 생강향과 진한 텍스처가 몸 안으로 깊게 들어온다. 잔이 작아서 양이 살짝 아쉬웠지만, 정통 짜이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식사와 디저트를 맛보진 않았지만, 옆자리에서 풍겨오는 향만 맡아도 ‘맛있겠다!’란 걸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을 땐 커리들이 ‘건강한 맛’을 지녔다고 한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은 친절했고, 그것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는 태도의 구성원들이었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의 착한 마음이 반영된 ‘사직동 그가게, 짜이집’. 이다. 영화에서 해원이 걷던 골목으로는 사직단과 어린이도서관 등이 있고, 그 길들은 조용해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직동 그가게' 주변의 풍경, 주말에도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직접 방문하기 전엔 몰랐다. 이곳이 티베트 향이 풍기는, 그리고 NGO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는 점 말이다. 찾아보니, 영화에서 느꼈던 심상과는 다른 감수성의 장소였고, 그래서 더 좋았다. 단순한 영화 속 그곳이 아닌, 착한 마음이 배어있는 가치 높은 장소라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책 등 모든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남다른 시선에 의해 정보들을 얻는 즐거움이 좋다. 그래서 나는 평생 문화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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