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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의 사랑,
영화<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에곤 쉴레. 나는 그의 짧지만 열정적인 예술을 향한 삶을 존경해왔다. 28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독특한 시각과 표현법으로 많은 예술인에게 영감을 줬던 그의 삶을 만나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없었다. 이유는, 전기 영화들은 사실에 기반되어야 한다는 그 틀 때문이라도 플롯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에곤을 좋아했기에, 그에 관한 서적을 많이 접했던 나의 기대치는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실존 인물의 삶을 축약한 서적들보다 더 축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 영화의 원작은 힐데 베르거의 <죽음과 소녀: 에곤 실레와 여자들>이다).


내가 에곤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조금 독특하다. 나는 영상을 전공했다. 그림에는 전혀 소질이 없고, 그림 그리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던 탓―아마 못 그렸기에 자신감이 떨어졌을 것―에, 성인이 되어서는 절대 그림을 그릴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웬걸! 학부 시절, 필수 전공 과목의 절반이 미술, 그러니까 그림과 관련돼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림을 그렸다. 평소,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나는, 그림에서도 그 점이 반영됐던 것이다. '오픈 마인드'였던 강사는, 나의 그림을 보고 "다함씨의 그림 기법은 쉴레의 그것과 닮은 것 같아요." 그림엔 문외한이었던 나는 "네?"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름부터 어려운 그 화가는, 그렇게 나와 인연―일방적이지만―이 되었다. '내 생각엔 최악의 나의 그림들이 대체 어떤 화가의 기법과 닮았다는 걸까?' 궁금함에 곧바로 검색을 했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음란한 소재, 날선 듯한 선의 표현들이 충격의 원인이었다. '강사님, 나를 놀리시려는 건가?' 속마음은 그랬다. 인상주의 화풍이 최고의 그림들인줄로만 알았던 그때 당시의 속마음은 그랬다. 하지만, 미술과 영상들을 접하면서 예술가들의 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기 시작했고, 에곤 쉴레에 대한 시선 역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에곤에 대한 개인 사연은 이쯤에서 접고,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치가 워낙 낮기도 했었지만, 영화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는 에곤의 삶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에곤의 삶을 색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영화의 톤앤무드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으니까.



영화의 시작은, 에곤과 그의 부인 에디트의 방에서부터 출발한다. 에디트가 독감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상태, 에곤도 감염되어 위험에 처한 상태다. 이들의 집에, 여동생 게르티가 찾아온다. 그렇게 영화는, 에곤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빈 예술아카데미에서 최연소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관두고, 창녀들과 미성년자를 모델로 나체를 그리는 등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어갔던 에곤. 클림트의 후원을 받는 등 천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짧은 화가 생활 동안 약 2,500여 점의 작품들을 남겼다.


영화는, 부인 에디트 외에도 작품에 영향을 미친 여동생 게르티, 댄서이자 모델인 모아 만두, 클림트로부로부터 소개받은 모델 발리 노이질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원작의 제목인, '죽음과 소녀'의 주인공인 발리 노이질과의 관계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둘은 진짜 사랑했다. 일과 사랑, 양면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이었다. 에곤이 에디트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 집안의 재력 때문이었고, 이 잘못된 선택은 당사자들의 삶 또한 비극의 원인이 된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에곤이 예술가로 거듭났던 때를 집중 조명한다. 영화를 통해, 생애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예술과 사랑에 대해서는 열정적이었던 에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제목 속 '욕망은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강조된 소재는 '사랑'이라 볼 수 있다. 사랑의 힘이 빚어낸 예술 작품들은, 그가 죽은 한참 후에도 기억되고 있고, 앞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나는 한 예술가의 전기를 다룬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사랑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사랑,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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