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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

진심 어린 사랑을 원한다면


우리에겐 고비와 슬픔의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누군가가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일 때가 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우리들은 말 많은 타인보다 말(대꾸) 없는 기계에 더러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그녀>는 그런 맥락에서 시작된다. 단순한 공감 기계 그 이상의 스마트함을 선보이는 컴퓨터 운영체제와의 연애를 다룬 이 영화는, 신선한 동시에 씁쓸함을 선사한다. 마치 미래에 '진짜 일어날 것만 같은'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가 이 영화에서처럼 타'인'과의 소통 부재를 겪게 된다면, 그야말로 관계의 단절이 우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실존'과도 결부된 이야기다. 인간은 소통하는 존재다. 또한 생각하는 존재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과 생각이 부재된 물질과의 관계 맺음이 확산된다면, 인간의 실존이 변화 혹은 왜곡되는 것이다. 결국 이 맥락을 통해, 영화 <그녀>는 진정한 관계와 소통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자신에게 걸맞은 맞춤형 운영체제를 만나고 '그녀(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외로움을 달래주고, 소통의 끈임을 확신한 사만다를 향한 테오도르의 감정은 진짜 사랑일까? 이는 조롱이자 경고다. 이 영화가 씁쓸한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이같은 상황을 상상해봤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있다. 사만다와 사랑을 이어가는 과정에서는 달콤할 수 있다. 여느 로맨스영화 만큼이나 달달함과 열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이별은 여느 작품들 이상으로 아프고 허무하다. 여기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허무'다.


타'인'과의 사랑에서의 이별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상대가 있다. 하지만, 이 운영체제는 감정이 없으며 이별하는 순간 존재(실존)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여지껏 쌓아왔던 사랑의 감정과 이별로 인해 치러야 할 아픔의 대가들은 오롯이 테오도르의 몫이 된다. 완벽한 상실이다.


하지만 사만다가 '나쁜' 상대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이 영화 속 사랑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 바로 경청의 힘이다. 진정성, 진실성 어린 이해는 결여될 수밖에 없지만,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말을 온전히 들어줬다. 그렇기에 테오도르는 사만다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었고,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속 가정이 언젠가는 실재할 것 같다. 하지만 이같은 사랑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타'인'과의 사랑을 해야 한다. 심장이 뜨거운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만다의 사랑법을 배워보자.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그 마음가짐이라면, 보다 더 진솔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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