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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송곳니>

본능이 거부하는 부조리



영화 <송곳니>는 2015년, <더 랍스터>로 국내 팬들의 관심을 주목받았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2009년 작이다. <더 랍스터>에서도 그랬듯, 감독은 <송곳니>에서도 인위적인 장치들을 통해 부조리를 표현한다.


<송곳니> 속 가족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부모와 한 명의 아들, 두 명의 딸이 살아가는 이 가정에서, 집 안팎을 넘나드는 인물은 단 한 명, 아버지 뿐이다. 첫 신에서부터 철 없는 게임을 즐기는 남매를 통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새 발의 피였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이 가족 구성원들의 기이한 구조와 모습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부모는 언어와 의미의 조작으로 아이들을 통제한다. 사회적 경험이 전무한 자식들은, 부모의 틀린 교육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가령, 이들 세계에서의 좀비는 노란 꽃이며, 성기는 가로등이다. 전화기를 달라하면 소금을 건네는 부조리한 상황. 이는 마치, 코미디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마치, 다른 행성 존재들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는 통제와 억압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행각은, 나쁜 지도자를 상징한다. 잘못된 방식으로 자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정하는 그는, 인간의 본질을 거스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소통을 차단하고, 자유를 통제하는 그는 나쁜 아버지다.


아버지의 행각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힘조차 없는 자식들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이 부조리에서 벗어나라고 부축인다. 이는, 송곳니가 흔들리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부모의 말을 따라 스스로 송곳니를 돌로 부수고, 탈출을 시도하는 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정의 부조리를 통해 통제와 억압, 그리고 폭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송곳니>. 그로테스크하고도 이해 못할 에피소드들로 쓴 웃음이 배어나오지만 그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한, 인상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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