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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킹>

태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 <더 킹>은, 주인공 태수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이 직면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경험해왔을, 품고 있을 이야기이기에, 특별하거나 새로운 작품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며 현 시국에 걸맞은 작품이기에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메가폰을 잡은 한재림 감독은, 특기인 탄탄한 시나리오의 힘을 <더 킹>에서도 예외 없이 발휘했다. 거기에 전작들과는 다른 묵직한 연출로, 영화 고유의 색을 완성시켰다.


영화는, 태수가 현재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설명하기 위해 소싯적부터의 성장담을 풀어간다. 양아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싸움꾼 태수는 '진짜 힘(권력)'을 지닌 인물이 되기 위해 학업에 집중하여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이후 사법고시에도 합격한 그는 검사가 되고,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해나간다. 부유한 집안의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까지 한 그는 꿈꿔왔던 훌륭한 인물이 된다. 하지만, 검붉은 유혹이 그를 갈등에 휩싸이게 만든다. 결국, 더 편하고 부유한 삶을 위한 유혹의 손길을 내치지 못한 태수는, 검찰 최고 권력자 한강식 편에 선다. '당연히' 한강식 주변은 투명할 리 없다. 그럼으로써 태수의 삶에서 정의와 양심은 뒷전이 되고 만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태수는 출세자가 된다. 물론, 태수 역시 그러한 삶을 지향했기에 위험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닥의 어두운 현실을 알아갈수록, 태수는 생애 중요한 가치들을 삽시간에 잃어가고 있음을 깨달아간다.


필자가 제목으로 표현했듯, <더 킹>은 태수만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태수의 삶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태수는 우리 자신이다. 누구나 사회, 경제적 권력을 잡길 희망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잡는 방식이 태수의 행보와 흡사하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것이 영화 <더 킹>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대한민국 권력자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한강식의 표현은 영화의 복선이다. 물론 우리는, 이 같은 작품들에 익숙해져있기에 당연히 '복수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정도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더 킹>은 새로운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익숙하게 봐왔던 사회고발성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더 킹>은 새로운 영화도, 고발성이 강한 작품도 아니다. 다만, 영화가 택한 방식은 칭찬하고 싶다(물론, 새롭지는 않지만). 태수라는 한 명의 인물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캐릭터로 몰입시킴으로써,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지에 대해 관객 스스로에게 자문의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양심과 노력을 배신한 욕망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아온 태수는,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가치를 발견한다. 인생은 예측불가한 동시에, 단면만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맛을 위해서라면 쓰고 떫은 맛을 견뎌내야만 한다. 응당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더 킹>은, 인생의 가치를 서술하는 휴머니티 영화라 볼 수 있다. 생의 과정 중에는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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