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해빙> 해석, GV 참석 후기

*스포일러 주의

이 포스트는, 영화 <해빙> GV 참석 후 해석을 위주로 했기에 스포일러 많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 관람 후 찾아주세요!




믿고 보는 배우, 조진웅. 그의 출연만으로도 <해빙> 관람을 결심한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 관객들 중 한 명이다. 좋은 기회를 통해 GV를 참석했고, 자리에 걸맞은 후기를 남기기 위해 해석 위주로 써나가보겠다.


<해빙>은 차디찬 공기를 머금은 도심 풍경들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3월은 절기상 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가운 날씨가 이어진다. 냉랭하고도 건조한 풍경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해준다.



주인공 승훈은, 잘나가던 강남 의사에서 외딴 마을 의사로 몰락하고 만다. 빚더미, 이혼 등의 아픔을 짊어진채 쫓기듯 내려온 그는, 환자들의 내시경 과정에서 정 노인이 가수면 상태에서 내뱉은 살인 고백을 듣고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때부터 승훈은 악몽을 꾸는가하면, 살인 고백을 한 정 노인과 그의 아들 성근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승훈을 더욱 옥죄게 만드는 이유는, 살인 고백자가 자신이 세 들어사는 주인집 가족이라는 점이다. 그때부터 관객은, 승훈이 되어 그의 행보와 내면에 스스로를 투영하게 된다. 승훈의 악몽과, 그의 주변에 맴도는 수많은 사람들은 승훈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혼란의 여지를 던진다. 그래서인지, <해빙>은 사건의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승훈이 추리소설을 '정답이 있기에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빙>에 대한 관객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이에 대해 감독은 "사실,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데 '이게 아닐거야'라고 생각해서 이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영화는, 명쾌하게 살인자와 피해자를 알려줌에도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살인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정 노인의 "처음이지? 하다 보면 익숙해져", 조경환 경사의 '살인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는 맥락의 말처럼, 영화 속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죄를 안고 있다.


개인의 이익, 복수, 심지어 목적 없는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 <해빙>에는 다양한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에 걸맞은 잔인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섬뜩한 점은, 인간의 이기심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목숨을 앗아가고, 물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것을 훔치고 혹은 진실을 은폐하는 죄인들. 지독하게 이기적이며, 타인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개인들이 모여있는 이 사회는 냉혹함 그 자체다.


승훈의 시각으로 비춰지는 장면들에서, 승훈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살인자다. 승훈은, 자신이 불행하게도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함정에 빠졌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지만 결국 그는 명백한 살인자다. 심지어, 경찰 취조 현장에서조차 승훈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이 맥락. 즉, 자신의 죄를 덮고 타인의 죄를 강조하는 이 심리는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수법과 동일하다. 정 노인과 성근, 미연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승훈을 활용한다. 결국, 그로 인해 승훈만이 자신의 원죄 그 이상의 단죄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결말로 이르기까지 앞선 문단처럼 인물 간의 밀고 당기는 힘은 팽팽하게 이어진다. 승훈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타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연거푸 인식하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모든 죄를 타인에게 밀어넣으려 한다. 자신이 행한 수법이 타인의 수법과 동일하기에,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진다. 무엇이든 먹어본 자가 맛을 알듯이 말이다.


<해빙>은 심리 스릴러다. 특히, 이 내면 연기에 집중했어야 했던 인물은 승훈과 성근이다. 탄로나지 않는 거짓말을 매 순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랄까. 선량함과 악랄함을 오가는 고도의 내면 연기를 펼쳐낸 조진웅, 김대명의 연기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영화들이 그려냈듯, 가해자와 피해자는 정해져있지 않다. 목적 없는 우발적인 살인사건들도 많다. <해빙>은 여기에 대한 경고도 던진다. 나날이 흉흉해져만 가는 요즘이다. CCTV, 블랙박스 설치가 확대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조심해야만 한다. 이미 빼앗겨버린 목숨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건>, 휴머니즘 가득 머금은 히어로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