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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가족의 죽음만큼 아픈 상황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당시의 슬픔 뿐 아니라 그 후에도 끊이지 않는 그리움, 후회 따위의 여운 때문에 유가족들의 가슴에 통증을 가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는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 소식을 접한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외로이 살아가던 그는, 형의 사후 처리를 위해 고향인 맨체스터로 향한다. 리는, 자신과 상의하지 않은 형의 유언장 내용에 당황한다. 바로, 조카(형의 아들)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달라는 내용이다. 스스로의 생활조차 위태로운 리는, 형의 유언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민 끝에 리는, 패트릭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보스턴으로 가자고 권하지만 패트릭은 맨체스터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보여주듯, 리의 삶은 불안정하다. 고객들에게 막말을 내뱉는 등 그의 삶은 막무가내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부인과 이혼 후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에게 한 명의 가족이 더 사라진 것이다.


그는 왜 고향인 맨체스터에서 떠나 외딴 곳에서 홀로이 삶을 택한 것일까. 바로 트라우마 때문이다. 형의 초상을 치르기까지 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아픔과 씨름한다. 이는,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플래시백으로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리의 성장 과정과 결혼 생활, 그리고 그가 저질렀던 치명적인 사건들을 확인하게 된다. 리는 자괴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괴로운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형의 죽음은 트라우마를 한번 더 끄집어내는 주요 사건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리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다. 스스로의 생활마저 감당해내기 힘든 그에게는, 형의 유언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그는, 도피를 꾀한다. 이 도피는 트라우마의 연장선이다. 도무지 책임질 수 없는,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짓누를 수밖에 없었던 큰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리의 일상과 과거를 좇으며, 그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나간다. 설명의 과정은 대단히 절제돼 있다. 바다 풍광으로 묘사되는 리의 내면 변화는, 절제에 힘을 가하는 연출 방식이다. 영화는 대사보다 상징성을 갖춘 미장센에 힘을 실었다.


상실에 의한 고통. 고통이 이어진 삶과 극복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대한 여운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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