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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노>

불신, 그 어떤 것보다 잔혹한 무기


이 영화의 주 소재는 타인에 대한 마음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다양한 마음(감정)을 갖는다. 마음이란,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동시에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한 사람에 대한 마음도 수시로 변한다.


<분노>는 제목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인 분노를 갖는 주체는 피해자라고 생각할테지만, 이 영화 속에서 분노하는 인물들은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 의심과 불신을 받는 피해자들은, 가해자들로 하여금 살인자의 누명까지 입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이 영화 속 가해자들은, 결단코 가해자처럼 비춰지지 않는다. 통상적인 가해자는 가시적인 범죄자다. 절도, 사기, 살인에 이르는 끔찍한 범법자들을 우리는 '가해자로 통칭'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해자들은 스스로의 죄에서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가해자가 허공에 띄워진 순간, 의심과 불신 역시 공기처럼 확장된다.


영화는 끔찍한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더운 여름의 도쿄, 한 부부가 욕실에서 무참히 살해됐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세 명. 각 인물은, 비슷한 인상의 외모와 제각기 과거의 비밀을 안고 있다. 그래서일까.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들은 지인과 이웃들에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용의자를 둘러싼 스크린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의 관객들까지도 각각의 용의자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른바, '의심몰이'에 가담하게 만드는 힘은 잘 짜여진 각본 덕분이다.


동명의 원작을 기반으로 탄생한 영화는, 작품의 끝에 이르러서야 살인자를 밝힌다. 이전까지는 각 용의자들의 수상한 행적들을 쫓으며, 미스터리에 힘을 가한다. 용의자들로 지목된 이들은 용의자 '같은' 기운을 끊임없이 풍긴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이것이 <분노>의 각본과 연출이 지닌 무기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의심과 불신의 잔혹성이다. 의심과 믿음은 상반된 마음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의 간격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가장 사랑했고 그래서 믿었던 이를 단시간에 불신해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사랑했기에 진심을 다해 표현한 말이 의심과 오해의 불씨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늘 그렇지만, 후회는 뒤늦게 찾아온다. 되돌릴 수 없는 사건,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이후에 찾아드는 것이 후회다. 후회 이후에 손 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간사하고도 이기적인 찰나의 마음 때문에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기 일쑤다.


영화 <분노>는, 여느 살인사건과 마녀사냥을 다룬 작품들보다도 잔혹하고 끔찍했다. 악한 '마음이 저지른 죄'를 꾸짖었기 때문이다. 이 꾸짖음의 대상은 스크린 속 인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꾸짖음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또한 따갑고 시렸다. 사랑했던 이를 의심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마음에 분노하고 울부짖는다. 그 아픔은 우리 역시 느껴볼 가치가 충분하다.


<분노>는, 잘못된 마음이 그 어떤 폭력보다도 잔인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쉽게 믿어서도, 의심해서도 안 되겠다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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