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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로닉>

관계의 단절, 그 참을 수 없는 저릿함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간다. 우리의 시간은 죽음보다 삶에 집중된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살아가는 만큼 죽어가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것이 인간사의 순리다.


그 누구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무리 숱한 간접 경험들과 이론적인 학습을 선행해도 막상 죽음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죽음과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명확한 징후는 병이다. 그 어떤 방법을 총동원해도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인간은 곧 죽게 마련이다.


영화 <크로닉> 속 '데이비드'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그는 죽음을 앞둔 다양한 환자들의 집에 머물며 그들의 최후까지 함께 한다. 데이비드는 헌신적인 간호사 이상으로 환자들과 가까이 지낸다. 환자들에게 소홀한 그들 가족들에 반해, 데이비드는 환자들의 일상을 공유하며 친가족처럼 생활한다. 따라서 데이비드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연인, 또는 동생이기도 한 셈이다.


데이비드의 헌신은 다양한 모습들로 표출된다. 간호 외에도 환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주려 노력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어떨 때는 환자들보다 더 서글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의 삶 역시 고달프다. 타인의 가족 역할은 곧잘 해내는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진짜 가족과는 멀어진 상태다. 이혼 후, 친딸과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데이비드의 삶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 모순은 데이비드의 삶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비드가 돌봐온 환자들의 가족처럼,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가장 먼 심적 거리를 두는 모순을 행하고 있다.


<크로닉>은 관계의 모순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삶의 끝에 놓인 환자들은, 신체적 통증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신체의 고통과 함께 삶의 끝을 맞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관계의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관계의 고통은 노력으로 덜 수 있다.


데이비드의 삶은 신체의 고통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관계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죽은 것과 다름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영화 <크로닉>.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보다 더 저릿한 삶을 살아가는 데이비드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덕목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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