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의 어두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의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던 그녀의 이야기는,
비릿하고 저릿하고 안타깝고 눈물겨웠다.
내가 잘 모르는 삶의 형태라,
온 몸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등을 쓸어주고 싶은 충동에는 휩싸이는 그런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씩씩했다.
오히려, 그러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투쟁했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고통의 크기에는 정량이 없다. 상대적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고통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그것의 크기를 어떻게 줄여나가느냐이다.
극복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한 중요한 것은 고통의 극복이다.
그녀는, 고통을 잘 극복해왔고 또한 극복 중에 있다.
앞으로도 헤쳐나갈 극복의 요소들이 많겠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빌어보면, 그녀는 분명, 잘해낼 것이다.
나 역시 고통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종류와 크기는 아니었지만 나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잘 해왔었구나, 그녀 덕분에 나는 나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앞으로 더 잘 해나갈 그 친구에게,
내가 큰 힘은 되어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갈 길 위의 작은 쉼터 정도는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먹구름 가득한 시간들.
하지만 먹구름이 걷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희번뜩하게 만들 찬란한 시간들이 온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찬란한 시간들임에도 불구하고 먹구름 가득한 때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먹구름이 가득할 때, 그것이 걷힐 것이라는 희망을 져버려서도 안 된다.
그녀는 먹구름 아래에서도,
희망과 자신감, 노력을 놓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찬란한 시간들을 기다리면 된다.
아니, 이미 그대의 지금은 찬란하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_2017.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