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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영화 <패터슨>


미국 뉴저지주의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패터슨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같은 패턴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올리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깨고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아침을 때운다. 사랑하는 아내를 깨우고 직장으로 향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직무를 수행하고, 점심시간이면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 밤에는 마빈(강아지)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단골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이것이 패터슨의 일과다. 이 나날은 규칙처럼 이어진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일주일 간의 패터슨 일상을 보여준다.


패터슨의 반복되는 삶 만큼이나 영화가 추구하는 무드도 꽤 건조하다. 그렇다면 우리(관객)는 '왜'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가. 역시나 '다름'이 존재한다. 앞에서 밝히지 않은 패터슨의 반복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시 쓰기'이다. 패터슨은 매일 시를 적는다. 이것은 취미 이상의 활동이다. 무미건조할 수 있는 일상의 활력소이자, 장래(성공)의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패터슨에게 있어, 시를 쓰는 시간은 가장 큰 행복의 순간들일 수 있다.


비록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패터슨이지만, 그에게는 낭만과 재능이 있다. 패터슨에게는 삶 전체가 예술의 원천이다. 아내와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직장, 술집, 길거리에서 스치는 많은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 모두는 시상(詩想)이 된다. 심지어 집에 있는 성냥갑마저 영감의 원천이다. 패터슨의 시는 꽤나 자유롭다. 쉬이 이해하지 못할 발상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패터슨에게 있어 시는 행복이다. 더군다나, 그의 작품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랑스럽고도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아내가 있다. 별 것 아니지만, 함께 영화와 식사를 즐기는 둘은 최상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소소한 꿈을 이뤄나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패터슨>의 모든 것일까. 물론 아니다. 짐 자무쉬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코드는 '아이러니'다. 이 일상의 아이러니들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 짐 자무쉬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이다.


<패터슨>의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무엇에 매진하고 열성을 다해도, 주변의 온갖 지지가 쏟아져도 허망하게 흩어지고 부서지는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아이러니는, 매일 밖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잦은 패터슨보다, 집 안에서 홀로 예술혼을 발휘하는 아내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들이는 점이다. 예술이란, 성공이란, 나아가 삶이란 무엇일까. 짐 자무쉬의 영화들은 이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공감되는 일상들을 모아, 관객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허망하고 부서지며 모든 것을 잃게 될지라도 내일은 해가 뜨게 마련이다. 오늘 해가 졌다고 해서 내일의 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짐 자무쉬는 이 소중한 삶의 진리를 알려준다. 삶이 고단하고 허망하다 여겨질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꿈꿀 수 있다. 노력과 좋은 기회가 만난다면, 그때는 삶이 (패터슨의 시처럼)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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