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여행법
책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지혜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러니까 철학을 위해 여행했다고 말한다. 특히 그들은 유럽을 여행하며 이론의 가치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행, 길 위의 철학>은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고대에서 현대를 넘나드는 철학자들의 여행법을 소개한다.
오로지 여름에만 바닷길을 통해 여행이 가능했던 고대 철학자. 하지만 그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철학을 위한 여행을 이어나갔다.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다니며 부유한 가정에서 보수를 받고 그들의 자녀 교육을 담당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고대 철학자들. 그들은 타국(지)에 머무를 때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단념했다고 한다. 한편, 철학자들에게 있어 여행은 철학을 위함이기도 했으나, 위험한 상황에서의 도피행이기도 했다. 어쩌면 철학자들이 여행을 통해 철학의 층을 드높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역경과 고난 덕분이 아니었을까.
한편, 순례길을 나선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이븐 시나, 알 가잘리와 같은 철학자들은 교리를 찾기 위한 여행을 행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종교인들이라면 이들 챕터에 크게 공감하리라 예상해본다.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챕터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여행이었다. 제목('여행, 의심을 없애는 과정')만으로도 인상 깊었던 토마스의 여행길은 연거푸 필자의 공감대를 자극했다. 게다가 '유머'까지 갖춰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펭귄'이라 불리기까지 했던 토마스의 체구는 뚱뚱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여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뚱뚱했던 그는 사색에 잠기는 걸 즐겼다고 한다. 누군가와 동행할라치면, 그들의 걸음을 따라가기 힘들어 곤욕을 치뤘다고. 하지만, 그 단점 같은 체구가 이점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묵직한 체구가 배를 정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때도 많았다고 한다.
위 같은 에피소드는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지만, 토마스의 여행에 대한 철학은 엄격하고 설득력 있다. 그는 여행을 의심에 대한 진실 탐구와 비교한다. '즉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답을 찾아내면서 의심을 없애는 것, 그것이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제안하는 '여행의 목적'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곧바로 목적지에 이를 수 없으며(우연히 목적지를 찾게 되지 않는다면), 따라서 어느 누구도 먼저 의심하지 않고서는 곧바로 진실을 찾을 수는 없다.' (113쪽) 이처럼 토마스는, 진실이란 의심과 문제제기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원한 여행자'로 불리는 장 자크 루소의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는다. 루소에게 있어 여행은, 일생과 심리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일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의 중요한 내용이기도 했다. 루소는 목적지 없는 여행, 즉 '노마디즘(유목민을 뜻하는 말)'의 형태로의 여행을 즐겼다. 어딘가에 이르기 위한 여행과는 상반되는, 오로지 떠나는 기쁨. 여행 자체가 목적인 '여행을 위한 여행'을 행했다. 만남의 우연성, 기후 조건 그리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이동의 순서, 리듬, 방향을 자유자재로 결정할 수 있는 무질서의 여행을 즐겼다. 루소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도보여행을 통해, 아름다운 광경에 취하고 문명의 물리적, 도덕적 압박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자연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 이후, 우주 질서와 하나가 되면서 의식 속 존재의 감정을 깨우는 것. 이것이 루소가 도보여행을 즐겼던 이유이자, 그를 통해 얻게 된 철학적 사유의 기반이다. 루소의 이야기 역시 <여행, 길 위의 철학>에서 주목받을 만한 챕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보여행과 철학을 소재로 다루는 책에서 어김 없이 등장하는 루소. 그는 위대한 철학자인 동시에 불안정성을 지닌 정신병자로 취급받기도 했다. 여러분들은 루소에 대해 어떻게 평가내릴지 궁금하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그는 정신적으로 매우 나약했고, 결국은 완전히 미치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의 철학은 망상과 공상, 신경쇠약 이상의 세계에서 파생됐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여행(걷기)을 즐겼다. 니체의 철학은 실바플라나의 호수를 산책하면서 보다 세밀하게 다듬어졌다.
한편, 실내에서의 여행을 택한 철학자들도 있다. 직접 바깥 세상을 딛어나가는 것이 아닌, 방 안에서 그들의 상상만으로 (내면)여행을 떠난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까지의 여행을 통해 완성된 철학자들의 사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위대한 여행가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