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암의 사계를 엿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법정 스님이 지내는 불일암의 사계를 글과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법정 스님의 책들에서 발췌한 글과 최순희 할머니가 불일암을 오르내리며 틈틈이 사진으로 엮인 이 책 은 '곁에 두고 마음에 새기기 좋은' 힐링 서적이다.
책의 목차 역시 사계를 반영한다. (春)흙을 만지다, (夏)바람 안에 머물다, (秋)햇빛 속을 거닐다, (冬)눈을 밞다. 이렇게 네 개의 제목 아래에 각 목차에 걸맞은 법정 스님의 글들과 그에 대한 감정을 북돋워주는 사진들이 어우러져 있다. 법정 스님의 글(생각)들은 많은 이들의 내면을 어루만져준다.
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더라도 <무소유>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에서도 무소유에 기인한 스님의 사상들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다수의 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는, 현자들의 글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는 정신이다. 자연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 그래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 욕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그들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
마음이 번잡할 때, 내면 수양이 필요할 때 이따금씩 꺼내어보면 좋을 책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를 추천하며, 필자가 감명 받았던 글귀 몇 가지를 옮겨보겠다.
서로의 향기로써 대화를 나누는 꽃에 비해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 인간인 우리는 꽃에게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
『홀로 사는 즐거움』, 「봄은 가도 꽃은 남고」에서(48쪽)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또는 정신적인 필수불가결한 수많은 것들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무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듯이 그렇게 준다. 이와 같은 자연의 선물을 받아서 제대로 적절히 사용하면 인간의 생활에 빛이 나고 유익하다. 그러나 그 선물을 과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거기에 상응한 배은망덕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텅 빈 충만』, 「인간과 자연」에서(88쪽)
자기 몫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건 생각이 떠올랐을 때 바로 실행할 일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따로 시절이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산방한담』, 「우리들의 얼굴」에서(148쪽)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가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무소유』, 「무소유」에서(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