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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춘 스케치>



<청춘 스케치>는 '시간 여행'을 돕는 영화다. '나도 저런 시기가 있었지'라며 과거를 곱씹게 만들어주는 청춘 영화. 주인공들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 집단이다.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레이나는, 텍사스 TV방송국에 입사하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와 갈등을 겪고 직장을 잃는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판매 아르바이트는 하기 싫어하는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의 전공(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친구와 연인 그 사이쯤 되는 관계인 가수 지망생 트로이. 그 역시 딱히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은 채 레이나 집에 얹혀 산다. 레이나 친구들 역시 그다지 좋은 형편은 아니다.

이렇듯, 레이나와 친구들의 청춘은 방황을 안고 흘러간다. 그러던 중 레이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마이클. 방송국 부사장인 그는, 청춘들의 입장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레이나 역시, 꿈에 대한 로망과 마이클의 끈질긴 구애로 사랑을 이어간다. 레이나와 마이클의 데이트는, 청춘들의 그것들과는 달리 꽤나 풍족하게 이어진다. 뿐만 아니다. 레이나는 마이클의 도움으로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친구들의 일상을 담아낸)를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완전히 상업성으로 점철된 결과물에 레이나의 의도는 증발해버린 것이다. 이에 레이나는, 마이클에게 화를 내고 둘은 멀어져 간다.

그렇다. 레이나를 비롯한 청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꿈'이다. 자신들이 하고자했던 것, 이루고자 했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청춘들은 무너지고 만다. 그 어떤 물질적인 것들도 꿈과 사랑 등의 정신적인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결국, 레이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과 순수한 사랑을 지향한다. 트로이와의 삐걱대는 듯한 사랑 역시 청춘들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들 중 하나다.

영화가 그려낸 것처럼, 청춘들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환경에 놓여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루고자 했던 꿈이 있었기에 전공에 걸맞은 취업 준비를 했고, 취업 이후에도 상상과는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고통 받기도 했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온전한 독립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릴 때도 있었지만 꿈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더 치열하고, 엄격하게 대할 때도 있었다. 사랑에 있어서도 <청춘 스케치>가 그려낸 상황과 비슷한 면들이 있었다. 나의 꿈에 보탬이 될 만한 이를 동경한 것을 사랑이라 착각한 때도 있었고, 경제적인 조건들이 사랑의 전제가 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진정으로 나를 기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 상황들을 겪은 후에야 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앞서 언급했지만, 억만금의 물질적인 것들도 꿈과 사랑을 사들일 수는 없다. 사들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절대 행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청춘은 물론, 방황하는 시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알아가는, 찾아가는 중요한 시기다. 영화를 보며, 나도 몇 해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20대의 조각들을 떠올리면, 그때를 잘 버텨온 나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방황하고 좌절했던 시기 역시 지나간다. 또한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지금의 내가 대견하게 느껴질 날이 올 테다.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 후회하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순수하게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청춘 스케치> 속 청춘들 처럼 말이다.

트로이: 모든 게 무의미한 거야. 단지 허무한 비극과 모면할 수 있는 상황들의 복권추첨 같은 거지. 그래서 난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아. 치즈 버거 같은 것 말야. 정말 맛있잖아. 비오기 10분 전의 하늘. 웃음이 수다로 변하는 순간. 그리고 편안히 앉아서 담배 한 대를 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청춘 스케치>에는, 90년대 초반을 반영하는 상품들과 음악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것만으로도 시간 여행의 요소로 손색 없다. 더욱이, 아름다운 대사들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 중, 마이클과 트로이가 레이나와 데이트할 때 나눴던 대사들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마이클: 제 옛날 집 지붕에서 별 보면서 행복해했던 게 기억 나네요. 다시 그러고 싶어요. 그저 별을 보면서 세상 모든 걸 음미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트로이: 거봐, 우린 이것만 있으면 돼. 담배 몇 개피,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 너, 나 그리고 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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