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신체 에너지를 다 쓴 후

얼마 동안 머리를 심하게 쓴 때가 있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나는, 제안서를 쓸 때면 (별 것 나오지 않을 결과물 때문에) 며칠에서 몇 주간을 골머리를 쓸 때가 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잠자리까지 뒤척일 정도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도 있다.


머리를 심하게 쓴 후 긴장이 풀릴 때면 스스로의 의식조차 깨우치지 못할 정도로 긴 잠에 취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 잠자리에 든 후 깨어나면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온 에너지와 머리(이성)를 다 쓴 후에는 마치 한 번도 이 땅 위를 걸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다리가 휘청인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바닥에 발을 디딘 후 휘청임을 경험했던 때가 몇 차례 있다.


머리를 심하게 쓴 후에는 '반드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그 재충전의 방법은 가벼운 산책과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줄 영화 한 편을 보러 가는 것이다. 대형(브랜드) 극장이 아닌, 씨네큐브 광화문이나 아트나인 등을 찾아,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극장을 찾는다.


어느날이었다.

그렇게 영화를 본 후, 커피 한 잔을 할 겸 일요일 낮 정동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머리를 심하게 쓴 후이기도 했고, 여독으로 신체 에너지까지 다 써버린 상태였다. 어떠한 것이든 채울 것이 필요헀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건 허기와 감성이다.


나는 그날, 감성을 채울 수 있었다. 어떤 소년의 눈빛을 통해서 말이다.

정신지체장애인인 그 소년의 눈빛은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둘러싼 눈망울은 크고 빛났다. 누구라도 그의 눈빛을 봤다면 자연스레 그의 시선대로 자신의 눈빛을 옮겼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의 시선을 따랐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줄기는 나뭇잎들을 관통했고, 그 나뭇잎들은 바람과 빛에 따라 아름답게 흔들렸다. 소년의 옆에는 그의 손을 쥐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버지 역시 소년과 함께 하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즉, 소년과 그의 아버지, 나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아! 순간, 나는 허기졌던 감성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런 게 '순수'구나, 라는 것을 직감했다. 소년의 아름다운 시선은 동조 현상을 발휘했고, 그로 인해 소진, 아니 탈진된 감성을 채울 수 있었다. 온 몸의 에너지마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다 써버린 후에는 그 공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텅 빈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와 몸(체력)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후, 나는 그렇게 감성을 채울 수 있었다. 한 소년으로 말미암아.


잠깐이었지만, 게다가 모르는 이였지만 나는 그를 통해 건강해질 수 있었다. 소년의 감정은 내 감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더욱이, 그것을 '발견'할 줄 아는 미덕을 지닌 한 소년으로 인해 나 역시 아름다운 정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