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독자, 특히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작가 임경선.
그녀의 신작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었다. 나 역시 임경선 작가의 책들을 좋아해오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 역시 가을께 교토 여행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교토의 가을 단풍이 끝내준다는 얘기를 엄청나게 들어온 터인데다, 요즘 여행에 잔뜩 꽂혀있는 상태다).
임경선의 '여행 에세이는 그녀의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시니컬하고 강단 있다고만 느껴왔던 그녀의 가치관과 그것들이 배어있는 문체와는 달리, 여행 에세이에서는 감성적인 면모가 느껴졌다. 여성적이며, 풍경 묘사도 훌륭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화려하다거나 과장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작가는 학창시절, 일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관광객의 입장에서 썼다기보다는 현지인이 일상에서 느낀 바를 적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토를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소소한 등의 수식어로 표현하곤 한다. 작가 역시 많은 이들이 느껴왔던, 묘사해오던 느낌과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교토를 설명한다.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인 만큼 전통과 그것을 이으려는 강단의 정신이 있는 곳이다. 더하여, 사치하지는 않지만 우아하고 고고한 품격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설명된다.
교토에는 대대손손 이어온 노포들이 많으며, 그 노포들은 그들만의 개성과 가치를 잇기 위한 노력을 끊이지 않는다. 노포의 주인들은 '그들이 손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주변을 거닐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손님들에겐 그들이 아끼는(가치 있는) 물건을 부러 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단골 손님들에게 특혜를 주며, 그들의 위상을 드높여주는 것이 노포(주인)들의 특징이라고 설명된다. 더 많은 금전적 이익을 창출하고자 발버둥치는 대도시의 상점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여기에서부터 느껴지는 고고하고 강단 있는 정신. '교토의 정신'이다.
앞선 문단에서 설명한 것처럼,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는 교토 여행의 가이드북이라기보다는 교토와 교토인들의 '정신'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개인주의 성향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진 않은 교토인들의 특징과 그로 인해 형성된 건전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교토는, 화류가들마저 고매하다. 게이코(게이샤)가 되기까지의 6, 7여 년 과정을 처음 알게된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책에는 교토의 정신이 배어있는 빵집, 카페, 서점, 목욕탕 등도 소개된다. 주로 '교토의 정신에 맞춰' 발품 팔아 찾아가야 하는 곳들이다. 골목 안쪽으로 자리잡힌 소위 '로컬들의 공간'들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그래서 열심히 메모해나갔는데, 책의 뒷면에 다 정리돼있었다. 참조하시길).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교토의 정신이 가미된 공간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물론, 생겨나는 것은 진정한 교토 정신이 밴 곳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심플하지만 재질이 우수한 제품들을 파는 공간. 실내외 인테리어 역시 심플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아니, 변할수록 더 멋스러움이 더해질 가구들로 장식된 공간들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 없는 공간들. 나도 바라는 곳이다. 오랜만에 들러, 옛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향수(노스탤지어) 가득 배인 곳. 교토에는 이런 곳들이 많다고 한다. 20대 초에 찾았던 교토는 물론 좋았지만, 그들의 정신을 체감하기에는 어렸던 것 같다(내 정신이 화려함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30대 초에 찾을 교토의 모습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르게 다가올 듯 하다. 아무런 준비도 안했지만, 벌써부터 교토 여행이 기대된다. 이 책이 그 기대에 불씨를 가했다.
임경선의 팬이라면, 교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교토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책 속에서]
역사가 오래된 노포일수록 그 오래됨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는다. _45쪽
남들이 다 유행ㅊ럼 사 가는 책보다는 흥미로운 관점과 콘셉트가 있는 책, 표지 디자인이 특징적이고 아름다운 책 현재 유통되지 않고 출판사 창고에 처박혀 있는 보물 같은 책들을 발굴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하는 것이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의 존재 의의였다. _71쪽
교토에는 경관 조례법이 있어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 색깔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_95쪽
오로지 교토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주민들과 기업들이 기꺼이 협조한다. 나 혼자 튀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그런 마음들이 모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변함없이 유지해나간다. _97쪽
카페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제아무리 호화롭게 실내 장식을 하늘 카페를 이루는 핵심 요소는 바로 거기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_105쪽
검약 정신과 선대의 지혜, 그리고 생활의 실용주의오 합리주의가 이제까지 교토의 식문화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_115쪽
교토 사람들은 소비에 있어 검소하고 냉철하다. '내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사지 않는다'가 교토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그들은 허세를 경계한다. _172쪽
교토 사람들에게는 돈보다도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에서는 수억 연봉도, 고급 외제 차도, 명품 브랜드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_177쪽
교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자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기주의를 조장하지 않는다. 아니, 개인주의 본연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이루는 공동체는 건강하고 유연할 수가 있다. _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