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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화 Aug 14. 2021

누군가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을 이야기 (2)

너 혹시 메갈이냐는 질문

 20대 초반의 나는 그 남자한테 거의 쳐돌아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100번 넘게 헤어졌지만, 100번 넘게 다시 만났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있었고, 남자친구가 잘못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늘 진짜로 헤어지지는 않았다. 진짜 헤어진 것 같이 살다가도 다시 만났다. 나는 일상에 남자친구가 없이 온전히 나 혼자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막연히 무서웠다. 그게 어떤 것인지 잘 상상이 안 되어서, 또 그걸 상상하자니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 늘 헤어짐을 보류했다. 어쨌든 나와 남자친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징그럽지만, 왜 사랑이 그렇잖아. 그 사랑만으로 사람들은 종종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용인하곤 하잖아. 그래서 어떤 날에는 헤어지고 싶다가도, 어떤 날에는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 이제는 정말 사랑이 끝났구나! 라고 느끼게 된 이후부터 거짓말처럼 이별이 두렵지 않았다.

 그 사건은 연애가 3년이 훌쩍 넘어갔을 때 일어났다. 남자친구에게는 매일 함께 공을 차고, 술을 마시고, PC방에 가고, 노래방에 가는 친구들이 여섯 정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어울려 놀던 사람들이었다. 내 남자친구에게 일베 말투나 농담을 가르쳐 주기도 했던 그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여자 친구를 데려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제일 어린데다 집도 멀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친구의 친구들이 나를 꽤 귀여워해주고 잘 챙겨주는데다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남포동까지 나갔다. 

 아마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던 것 같다. 술자리가 고조되면서 수위가 아슬아슬한 농담들 때문에 내가 몇 번 기분이 상했었는데, 그 농담이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답답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굳힌 농담은 지금까지도 내 귓가에 선연하다. 남자친구의 친구 중 하나가 “야, 느그 몇 년 전만 했어도, 느그 여자들은 어? 내랑 이렇게 겸상도 못 했을낀데. 어? 으데서 여자가. 으이씨.”라고 했다. 내 남자친구가 웃었다. 남자친구의 친구들도 웃었다. 농담을 한 남자의 여자친구가 꺄르르 웃었고,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도 꺄르르 웃었다. 거기서 나만 안 웃었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술만 몇 잔 더 마시고 집에 가고 싶다고 얘기해서 도중에 나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2차를 갔을 거다. 남자친구가 나를 현관문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키스를 했다. 나는 그걸 대충 받아주면서도 계속 그 농담이 생각나서 키스가 하기 싫었다. 그 농담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고 얘기는 안 했다. 남자친구는 또 나보고 ‘자기는 그런 농담에 너무 예민해.’, ‘그래도 다른 여자애들은 그런 생각 안 하고 웃었잖아.’, ‘자기만 그런 거야.’, ‘그런 걸로 혼자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라고 할 것 같았다. 그 날 나는 나한테 남은 사랑이 끝났다. 

 우리는 미적지근한 일상을 조금 더 살다가 헤어졌다. 마지막에 헤어지면서도 개그맨 장동민 얘기를 했었다. 뭐 때문에 그 얘기를 한 건지, 무슨 얘기를 한 건지는 흐릿해져 버렸지만, 남자친구가 씁쓸하게 말했던 것은 기억난다. 자기는 장동민 싫어하잖아..하던 것이. 잘은 모르지만 그 이별에는 분명히 장동민씨의 지분도 좀 있을 것 같다..ㅋ 아니, 분명히 있다. (탓하는 거 아님. 헤어진 거 후회 안 하고 나는 행복함)

 장동민씨의 지분이 있을 그 이별 후, 거의 2년 동안은 남자를 아예 만나지 않았다. 근 4년 가까이 연애를 하면서 별의 별 것들을 다 해봤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과의 연애가 궁금하지 않았다. 다 똑같아 보이고, 다 시시하게 느껴졌고, 또 지난 연애가 내게 줬던 피로감을 다시 겪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는 중에 메갈리아는 여러 번 사이트가 사라졌다가 만들어지기를 반복했고, 여성들끼리 싸웠고, 분열했고, 그러다 또 연대했고, 이런 것들을 또 반복하면서 워마드가 생겨나고, 남자들은 이들을 싫어했다.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후 남자들은 임산부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군가산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입 아프게 길게 묻지 않고, 너 메갈이야? 하고 물었다. 나는 서른마흔다섯여섯 일만 이천 칠백 삼십번 정도 들은 것 같고, 나의 친한 친구들도 비슷하다. 아주 의기양양하고 장난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는 남자들을 보면, 야마가 홰까닥 돌아버릴 것 같다. 이 질문에 왜 화가 나느냐, 스스로도 메갈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냐, 이렇게 몰아세우며 비꼬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들은 너무도 간편하게 “왜? 네가 아니라고 시인하면 편하잖아” 혹은 “네가 안 찔리면 되잖아.”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기득권자로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젠더 권력이다. 나는 너 메갈이야? 라는 질문을 이성에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젠더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아, 쓰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좀 열 받는데 계속 얘기해본다.. 그래. 애초에 메갈이야? 라는 질문 자체가 너무 성의가 없다. 너 페미니스트야? 도 아니고. 그리고 애당초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시대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 라는 티셔츠를 명품 브랜드에서 찍어 파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무려 우리가. 사람들은 그걸 돈 주고 사 입고 돌아다닌다. 세상이 그렇다. 

 메갈이냐고 묻는 남자들 질문의 기저에는 너는 지금부터 나한테 네 사상과 가치관이 ‘정당하다’거나 ‘무해하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오만이 깔려있다. 젠더 감수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고 공부 할 마음도 없으면서, 야, 너 말 잘 못 하면 내 기준의 정상/비정상의 부류에 멋대로 분류할거야. 하면서, 너무도 뻔뻔하게 여자를 검열한다. 꼭 자기가 나를 거르고 말고 할 수 있는 거름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관계에서 자신이 나보다 우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메갈이냐고 물으면서 짓는 남자애들의 표정을 안다. 여차하면 ‘장난’이라는 무책임한 포장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언제든 도망갈 준비가 되어있는 얼굴. 가해와는 전혀 무관한 듯 청렴하기 그지없는 얼굴.

 (노파심에 덧붙이는 말. 상화님의 지나친 피해망상이 아닐까요? 비약 아닐까요? 라고 생각하신다면, 자신이 여성들에게 ‘너 메갈이야?’라는 질문을 했을 때, 얘가 뭐라 씨부리는지 지켜봐야지ㅎ하는 마음이 정말 개미눈꼽만큼도 없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게 제가 말하는 님이 가진 젠더권력이에요.)

 이 당시에는 남사친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참 자주 했는데, 그럴 때 마다 그 술자리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고 서로 싫은 소리를 하고 헤어졌던 것 같다. 혹시 여성에게 그런 얘기를 했고, 당시 그 여성이 애매한 표정과 함께 별 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이후 여성이 절대로 먼저 연락 하지 않는다면, 그 남자는 걸러진 거다. 때때로 남자들도 마찬가지의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남성도 생각보다 많으니까. 그 중에는 제발 티 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회가 될 때마다 티는 내고 있으나, 나는 아직까지 현실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그 상황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졌다. 나 혼자서만 야, 메갈이 어디서 온 줄 아냐? 페미니즘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알아? 성차별이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서부터 만연했어, 어디서부터냐면…, 이러고 있고, 남자애들은 아니, 그래서 너 메갈이라고? 대박이네. 평등? 그래, 완전 평등하다고 볼 순 없지. 근데 남자들이 2년 군대 갔다 온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건 사실이잖아. 이랬다. 그리고 비슷한 결의 대화는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 중임. 이게 정녕 실화인지 궁금하면 네이버 뉴스 사회면으로 들어가서 성평등 관련된 기사의 댓글 창으로 가면 된다.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얘기로 싸우는 게 나만 힘 빼고, 스트레스 받고, 열 불내는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 그래서 한동안은 남자인 친구들의 연락은 될 수 있는 한 피하면서, 여자인 친구들이랑만 놀았다. 적어도 여자인 친구들은 내 사상검증을 하지 않았고,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 주제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는 잘 알 것 같은 것과 아직도 옳은지 아닌지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런 만남들과 아직 미숙한 대화들이 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남자애들이 야, 아무리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한국은 외국이랑 좀 다르지. 남자들이 군대를 가잖아, 군대를. 로 시작해서 자신이 군대에서 받은 불이익에 대해 온종일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 보다는 나았다.

 나는 남자들과 이런 주제로 얘기하는 것을 관두었다. 비겁하지만 계속 내 의견을 피력하며 감정소모하고, 그들에게 스트레스 받는 게 싫어서 피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의 예전에는 된장녀가 아닌 개념녀가 되어, 남자친구에게 사랑 받는 삶(끔찍)이 있었다. 뒷걸음질 하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은 지극히 조용한 것들이었다. 여혐 기업을 불매하고, 청원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때때로 자기검열을 하고 자기 탓을 하는 여자 친구들을 독려했다. 

 여성들이 혜화역으로 나왔다. ‘그런 것까지 따지는 건, 좀 예민한 것 같다’는 말을 들어온 여성들이 나 뿐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들은 그들을 비웃었고, 구경했고, 비아냥거렸다. 아마 메갈이냐고 물으며 지었던 그 표정으로. 하지만 그 여성들은 커다란 사회 속의 아주 작은 나사들부터 바꾸고 있었다. 헤어진 남자친구는 나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회는 바뀐다. 누군가의 시선에선 그게 아주 미묘한 변화일지라도, 그것은 틀림없이 작은 변화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분들에게 빚을 좀 졌다.

 내 남사친들은 이제 내게 더 이상 메갈이냐고 묻지 않는다. 썸녀의 성향이 레디컬 페미니즘에 가까운 것 같아 하는 소리를 하는 때도 있다. 뭔가 바뀐 게 맞다. 현실에서의 남성들이 이제는 김치녀, 된장녀, 같은 단어를 농담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늙은 남자들의 칭찬을 빙자한 성희롱에 동조하지 않는다. 술자리의 농담 수위가 아슬아슬할 때, 단호하게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시대가 어느 시댄데. 하면서 잘라내기도 한다.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든 우러나지 않은 것이든,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닥뜨려야 하는 진짜 숙제는 아직까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진짜 알겠다. 그것도 불현듯.

 안산선수 페미니스트 인가요? 근래 들어 본 질문 중에 제일 신기했다. 

 남자들은 이제 너 메갈이야?라고 묻지 않는다. 너 페미해? 하고 묻고 있었다.

 백래시, 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로,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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