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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뭔지 아는 너

피낭시에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이하 언니)가 등단을 했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그 글의 초고를 읽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원고를 덮고 난 후 가슴을 쿡쿡 찌르는 슬픔 때문에 한참 동안 어깨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작품은 엄마를 먼저 떠나보낸 어린아이의 슬픔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였다.     


 언니는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아역배우들의 눈물 연기를 보며 정말 잘한다 칭찬하면서도 동시에 ‘저건 거짓말이야. 난 아이들의 감정 표현은 정말 담백하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하고는 했었는데 나 역시 매번 그 말에 공감했다. 아이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언니의 말대로 ‘아이의 슬픔은 담백하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다양한 단어로 표현할 줄 몰라서라기보다는 감정을 꾸밀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뿐 온 마음으로 다 아는 것이다. 아이들의 ‘사랑’ 역시 그렇다.     




 “두루야, 사랑이 뭐야?”     


 두루와 제법 말이 통하기 시작할 무렵, 뭘 알겠냐 싶어 툭 하고 던져보았는데 막힘없이 ‘엄마, 아빠, 허누(본인 이름)’라고 말하며 양손을 가슴 위에 포개던 두루. 정말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정말 오만이었음을 깨달은 사건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 잘못도 없는 아기를 내 몸이 힘들다는 핑계로 종종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부끄러웠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 허누’

 아, 이렇게 확실한 사랑이 내게 또 있을까.




 

 사랑이 뭐냐고 물어오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사랑에 상처받고 ‘역시 영원한 사랑은 없어’라고 울며 불며 했던 것이 몹시 쑥스럽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두 갈래 길 위에 한 발씩 누르고 서서 굳건히 지켜내고 싶은 사랑을 한다.

 언니 글을 읽고 나서 문득 생각이 나 밥 먹다 말고 물어봤다.     


 “두루야, 사랑이 뭐야?”

 “우리 가족”     


 많이 컸다. 이렇게 대답해 주니 고맙고 안심된다. 앞으로 두루에게 사랑이 때로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되기도 하고, 가금은 누군가가 물어봐 줬으면 하는, 또 어떤 날은 정말 그게 무엇인지 간절히 알고 싶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시 이 군더더기 없는 사랑을 느끼기까지 꽃길만 걷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확실한 사랑을 느끼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랑이 뭔지 아는 너.     

     



 모양은 단순하지만 헤이즐넛 버터(태운 버터)를 넣어 만든 깊고 진한 풍미의 피낭시에. 버터가 끓기 시작하면 눈을 떼지 마세요! 눈 깜짝할 사이에 파르르 끓어 넘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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