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어머니는 베란다에 버너를 놓고 쪼그려 앉아 무쇠팬에 고등어를 구우셨다. 집에 생선냄새를 들일까봐 그러셨다. 그 당시 우리 집 베란다에는 작은 소나무 분재가 있었는데, 그날 고등어구이에서는 솔잎 향이 났다.
그날 이후로 맞은 어버이날에 베란다에 서서 어머니께 편지를 읽어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편지에 ‘엄마가 생각해서 구운 고등어구이에서 솔잎 향이 난다고 투정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적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눈물을 터뜨리셨다.
제 마음에 있는 미안함을 털어내고자 쓴 편지였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라 짐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식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 작은 사건이 어머니도 모르게 가슴에 맺혀있었다는 것이 선연해졌다. 나는 아직도 어린 날 천진한 얼굴로 어머니께 안겨줬던 무안함에 대해 후회하곤 한다.
어머니는 여상을 나와 성인이 되자마자 충무로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셨다. 20살의 어머니는 퇴근길에 가슴에 전공책을 품고 몰려나오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하셨다. 그리고 검은 투피스를 입은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했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딸은 충무로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충무로를 걸으며, 어머니는 네가 이 대학에 와서 참 좋다고 하셨다. 무뎌진 자리에 아프게 맺혀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졌다고 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수없이 생채기 났을 마음들을 이제는 조금씩 어루만져줄 힘을 느꼈고, 한 인간으로서 꽤 괜찮은 역할을 해냈다고 느꼈다.
어머니는 여전히 고등어를 좋아하신다. 저렴하고 영양가도 풍부한 생선이라고. 그덕에 나도 고등어를 좋아한다. 돌아오는 생신에는 미역국 끓여 어머니 수저 위에 잘 구운 고등어 한 점 발라 올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말씀 드려야겠다. 앞으로 더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것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