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시작하고 내 공간을 꾸리면서 하고 싶던 일 중 하나가 바로 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내게서 난다고 말하던 ‘집 냄새’를 지우고 싶던 은연중의 욕구였다. 마트에 가서 테스트 향을 하나하나 맡아가며 새로운 향의 섬유유연제를 샀다. 후각이 예민한 아버지 덕에 들일 엄두가 나지 않던 디퓨저도 탁상 위에 놓았다. 향의 세계를 알아가던 처음 몇 년은 흥미로웠다. 처음으로 향수의 세계에 입문하고, 가벼운 음식이나 외출의 공기에서 묻어오는 냄새들이 집에 배는 것을 늘 경계해야 했다. 옷과 이불에서 스스로 선택한 향이 진동하면 어떤 황홀감에 취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어떠한 향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이것저것 여러 번 향을 바꿔봤지만, 뭐 하나 이렇다 하게 마음에 드는 향이 없었다. 햇볕에 빳빳하게 말린 수건 냄새도 아니고, 가끔 습한 날에 덜 마른빨래에서 나던 꿉꿉한 냄새도 아니고, 2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묵은 옷장의 냄새도 아닌데, 다른 어떤 향에도 정착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떠나온 지 3년이 지났다. 얼마 전, 오래된 친구를 만나서 물었다. “나한테서 냄새 나?” 그러자 그 친구는 말했다. “응, 너네 집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 “서울집?” “아니 너네 본가 냄새” 조금은 충격이었다. 3년 동안 아무리 많은 향을 덧씌웠어도 결국 나에게선 같은 향이 나는구나. 그 사실이 참 묘하기도, 끈질기기도 했다. 어쩌면 향이 달라졌어도 상대에게서 내가 맡고 싶은 향을 찾아 맡을 수도 있는 것일까. 같은 동네에서 자란 오래된 친구들은 꼭 나에게서 늘 익숙한 섬유유연제 향이 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쓰던 섬유유연제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지금, 나는 섬유유연제를 바꾸기로 했다. 본래 나의 냄새로, 내가 가장 안락하다고 느꼈던 향으로, 어머니가 늘 같은 세탁기에 늘 같은 비율의 세제로 세탁해 주시던 옷감의 향으로.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모순적이게도 이제야 ‘집’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굳이 다른 향으로 바꾸고 덮어보려 애쓰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그저 내가 가장 편안한 것을 추구하려는 모습이 이전만큼 나약해 보이거나 굴복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의외로 바른 길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사로운 것을 뒤집어 나를 변화시키려 해도, 나는 나의 모습대로 그렇게 흘러간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일까. 나는 그동안 나의 모습을 얼마만큼 부정하며 수긍하고 살았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대로 계속해서 흘러간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의 향을 퍼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