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쓰면 가장 기본적으로 마주하는 질문
“나는 어떤 사람인가?”다.
나는 자기소개를 어려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MBTI문항 중 ‘종종 자신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까?’ ‘자신을 소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십니까?’라는 질문에 늘 ‘매우 그렇다’ 동그라미를 가득 채우게 된다.
나의 성장배경, 강점과 단점, 비전과 가치관까지 이력서는 짧게는 1500자 길게는 5000자 안에 내 모든 것을 담아낼 것을 요구한다. 그것을 잘하는 이들이 있겠다. 가시적인 성과를 많이 이루어낸 사람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자신이 실패자라고 여기진 않지만, 그렇다고 많은 성공을 경험하고 살아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낙천적이게 살아왔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늘 그런대로 행복했다. 그런데, 이 이력서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작아지는지, 이력서 탭을 화면에 띄워놓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머리를 쪼개고 또 쪼갠다. 그럼에도 써지지가 않으면 끝이 없는 돌림노래처럼 늘 같은 생각에 부딪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내 이불과 방 안에서 가장 온전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커리어보다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맹목적인 사랑을 믿으며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별 접기를 잘하고 십자수를 잘하며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다. 물건을 아끼고 오래 사용할 줄 알며 자원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들에게서 배움을 얻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이력서에 적을 수 없다. 가시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며, 무엇보다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력서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할 무언가를 온 힘을 다해 짜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나를 증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나는 무가치한 인간이 아닌가 하는 비참한 생각에 쉽게 잠겨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그 생각을 떨쳐버릴 방법을 찾고 있다. 운동을 하고 병원에 가고 먹는 것을 조절하며 내가 나를 제어하며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 취직, 비단 직업을 갖는 일 말고도 인생에선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의 길이 있다. 내가 나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력서 앞에선 그래야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삶에서 지속될 순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젠가, 차곡히 쌓아온 내 선택들이 굳이 말로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을 표현해 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정해진 글자 수 내에서 나를 설명해야 할 테지만, 더 먼 미래를 그려다 보면 그것은 아주 잠깐의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그리고 나에겐 그것 말고도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있으니 절대 벌써 지쳐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갈 테다. 더 높이 오를 테다. 더 자유로워질 테다. 그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