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다마 까기

by 땅쿵

뒷담화가 뒷다마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뒷담화'는 우리말 '뒤'와 한자어인 '담화'가 결합된 단어로 뒤에서 남을 헐뜯는 것을 말한다. 뒷담화는 뒷다마라는 속어에서 비롯된 단어다. '다마'는 일본어 '아타마'에서 유래된 단어로 머리통을 뜻하는 속어다. "뒷다마를 깐다"라는 말은 "뒤통수를 친다"라는 말과 같으며, 상대방이 모르는 상황에서 하는 험담을 의미한다. '뒷다마'라는 속어가 '뒷담화'라는 표준어(?)로 순화된 케이스다. 또다른 표현으로는 '씹는다'라는 잘근잘근한 은어가 있다.


뒷담화는 의견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회성과 억압된 표현본능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여성들에게 뒷담화라는 수단이 없다면, 인류는 이미 멸절했을지도 모른다. 일부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뒷담화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동지애를 느끼게 해준다는 바람직한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뒷담화를 시작하기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적군과 아군을 식별해야 하는 것이다. 철저한 아군이 아닌 경우,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상대방은 또다른 자리에서 나에 대한 뒷담화를 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되새기는 것 또한 필요하다.


직장에서 직원끼리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동의 적을 가지는 것이다. 그 공동의 적은 대부분 직장상사, 내지는 꼴보기 싫은 다른 동료 직원이다. 통상 뒷담화의 대상은 뒷담화의 대상이 될만한 필연성을 가진다. 단순히 자신들과 다른 부류라는 이유만으로 뒷담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비주류에 속해있는 경우, 뒷담화의 대상은 주류에 있는 직장상사나 잘 나가는(하지만 잘난척이 심한) 다른 직원이 될 수 있다. 꼭 논리적이거나 타당한 근거가 있어서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되돌아보건데 직장생활을 하며 가졌던 수많은 술자리에서 회사와 직장 상사를 씹었던 기억을 빼면 별 다른 이야기거리는 없었다. 뒷담화를 통해 우리는 회사와 직장상사라는 두개의 거대한 공동의 적을 두고 싸우는 동지가 된다. 뒷담화를 통해 우리는 시월드라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가련한 며느리라는 공동의 운명체로 거듭나게 된다. 어른들은 술만 먹으면, 국가와 정부에 대한 뒷담화에 열을 올리고, 학생들은 떡볶이를 먹으며 담탱이를 욕하는데 여념이 없다. 대부분의 뒷담화에는 자기 자신의 입장이 아닌 다른 관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뒷담화로만 그칠뿐 아무런 생명력을 가지지 못한다.


뒷담화는 타당한 근거와 용기가 결합되면 전면으로 나올 수 있다. 그때 그것은 더이상 뒷담화가 아닌, 비판과 부조리의 척결이라는 정의의 수단으로 변신한다.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저자의 편협한 사상을 비난하면 그것은 뒷담화지만, 블로그나 칼럼을 통해 비난하는 것은 평론이다. 회사 사장의 횡포에 화장실에 모여서 수근거리는 것은 뒷담화지만, 의견을 개진하고 노동청에 탄원하는 것은 정당한 인권행사이자 노동운동이다.


뒷담화가 만연한 조직과 사회는 썩어간다. 불평과 불만이 많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다. 그것은 뒷담화 대상의 문제일수도 있고, 소통의 문제일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뒷담화를 삶의 전면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건전한 비판기능과 잘못된 부조리는 바로 시정될 수 있다는 개인적,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쓰다보니 너무 거창해졌다. 윈래 뒷담화도 이런 식이다. 별 생각이 없이 두뇌의 작용없이 입구녕에서 터져나오는게 뒷담화다. 그냥 이 브런치는 "나 자신 이외의 다른 썪을 것들을 뒷다마 까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제된 분노는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창한 담론은 아니여도, 어느정도 생각은 하면서 쓸 생각이다. 일단 그럴듯한 뒷담화라고 해두자.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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