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누구의 편인가?
여전히 검찰과 청와대는 대결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연일 기레기와 언론이 쏟아내는 가짜 뉴스와 침소봉대에 이제 사람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취임에 이은 (기성언론의 표현대로 하면) 숙청에 가까운 인사이동이 있었다. 이후 검찰의 반발은 여전하지만, 상황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 하다.
이 지겨운 검찰과 언론의 이야기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쟁점은 하나다.
과연 검찰과 사법부가 정의를 수호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검찰조직 내지는 특정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조직이 체제수호가 아닌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움직인 사례는 거의 없다. 여기서 그럼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접어두자. 더 머리가 아프고 싶은 사람은 마이크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정독하기 바란다. 정의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프랑스 국기가 표현하고 있는 인권(박애)과 평등, 그리고 자유가 바로 정의다. 정의는 개인의 신념이나 공리로 치환할 수 없는 객관적 절대 진리다.
"마치 재판의 목적이 공평함에 있는 듯 말씀하시네요"
"그것말고 다른게 있습니까?"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 재판은 우리 귀족 계층에 유리한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수단에 불과합니다....(중략)...법원은 오직 사회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를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려는, 도덕적으로 평균 이상인 사람들을 이른바 정치범으로 분류하고 평균 아래인 사람들은 이른바 범죄형 인간으로 분류해서 고통을 주고 교수대에 세우죠"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네흘류도프와 현 사법체계의 열렬한 옹호자인 그의 매형 라고진스키의 대화다. <부활>에서 톨스토이는 당시 제정 러시아에서 썩어 빠질대로 썩은 사법체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여자주인공인 마슬로바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되고, 그녀와 인연이 있는 네흘류도프는 배심원으로 찾은 법정에서 우연히 그녀와 조우하게 된다. 배심원들의 실수로 실형이 확정된 미슬로바를 구하기 위해 네흘류도프는 백방으로 뛰어다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네흘류도프는 많은 부조리를 목격하게 된다. 죄가 없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귀족의 한마디에 즉각 사면이 되는 것이 그 당시 사법체계의 현실이었다.
우리네도 별 다르지 않다. 비단 조선왕조 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수십년전만 해도 사회정의라는 탈을 쓴 야만적인 공권력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이 주장했던 체제수호는 국가가 아닌 그들의 밥그릇이 대상이었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2조가 무색하던 그 시절에서 불과 30년이 지난 2020년 1월 지금은 어떠한가? 여전히 본인들이 국가권력, 그리고 절대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자기들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