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자유에 대해
아들 초딩 졸업 기념으로 가족들과 뷔페에 갔다. 가격이 만만찮은 씨푸드 뷔페다. 일년에 한두번 가는 곳이니 배터지게 먹을 각오를 다지며 매장안으로 들어섰다. 시작은 가볍게 초밥과 스시. 접시를 들고 자리에 돌아오니, 아들녀석이 접시에 떢볶이 한가득을 담아와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한소리 했다. 왜 비싼 뷔페에 와서 싸구려 떢볶이를 먹고 있냐고 말이다.
아들녀석은 항변한다. 자기는 떢볶이가 제일 좋다고 말이다. 그래도 다른 비싼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라고 강권한다. 떡볶이는 아무때나 먹을수 있지만, 여기 있는 다른 음식들 언제 먹어보냐고 말이다. 투덜거리며 아들이 새로운 접시에 담아온 것은 닭꼬치와 핫윙 한무더기였다. 그래, 너를 데리고 뷔페에 오는게 아니였어. 그냥 떡볶이집을 갈걸 그랬어. 후회막급이다.
뷔페는 선택의 자유가 넘쳐나는 곳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양의 제한도 가격의 제한도 없이 마음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뷔페에서 우리의 선택은 제약을 받는다. 비싸고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메뉴로 사람들이 몰린다. 또한 먹고 싶은 것보다는 많은 메뉴들앞에서 이것도 먹어봐야 하고 저것도 먹어봐야 하는 강박증이 작용한다. 선택의 자유가 넘쳐나는 파라다이스에서 정작 선택은 우리스스로에 의해 제한된다. 물론 서민들 얘기다. 평소에 음식값 몇천원에 숱한 선택의 기로에 서는 서민들 말이다.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곰곰히 뒤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유스럽게 선택을 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강요되었고, 어쩔수 없이 선택한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학교가 그랬고, 전공이 그랬다. 직업, 직장이 그랬고, 사는 곳이 그랬다. 선택보다는 타협이 더 많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기합리화로 애써 외면해왔지. 그러다가 또 선택의 기로에 선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할수있는 선택의 가지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단지 더 좋은 대학과 그보다 더좋은 대학이라는 또다른 2가지 선택지 앞에 놓일 뿐이다.
삶은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의 선택과 다른 사람의 선택이 우연히 만난 결과일 뿐이다. 인생을 제대로 사는 방법은 뭔가 좋은 것을 제대로 고르는 방법을 터득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를 의미하는 영어 리버티(Liberty)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르트르의 사상을 인용하면 자유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실제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행위의 목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다.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만이 자유인인 셈이다.
고 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리면 자유(自由)는 자기만의 이유다. 자기만의 이유는 외골수가 아닌, 신념을 말한다. 신념이라는게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자.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자신만의 선택을 하자. 떡볶이 먹고 싶으면 떡볶이 먹고 짬뽕 먹고 싶으면 짬뽕 먹자. 인생 짧다. 눈치보지 말고 살자.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 장 폴 샤르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