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집단해고가 구조조정이냐?
잘 나가던 회사는 양아치들에게 인수된 이후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이 회사를 다니면서, 과거 우리가 정치 운운했던 것들은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었다. 중상모략과 아부가 횡횡했다. 오랜만에 만난 협력업체 직원조차 우리 회사의 신세력과 구세력간의 전황에 대해 궁금해했다. 신세력은 우리 회사를 인수한 양아치 집단에서 선임한 신임 사장과 그가 데리고 온 똘마니들, 그리고 시류에 편승하려는 기존 직원들 - 기회주의자들었다. 구세력은 근속년수가 오래된 기존 회사 인력들로 멍청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당초부터 안 되는 게임이었다.
온갖 풍문과 카더라라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회사실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구조조정에 대한 소문이 회사를 잠식하고 있었다. 당초 양아치집단이 우리 회사를 인수한 이유는 단기간에 쥐어짠 실적을 부풀린 다음, 다른 곳에 팔아먹기 위함이지 어떤 다른 장기적인 목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한들 그들의 행태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럴듯한 비전으로 기존 인력들을 현혹했지만 그것은 액자속의 글귀였을 뿐이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숫자에만 연연할 뿐, 직원들과 어떠한 인간적인 관계도 형성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할 정도로 순진한 구세력들은 "일만 잘 하면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에만 의존한 채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어떤 프로젝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의 팀원들에게 약속한 성과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사 실적이 좋지 않으니 보상은 유예한다고 했다. 그러던 와중, 급작스레 구조조정이 결정되었다. 희망퇴직이 아니였다. 실적이나 고과에 근거한 퇴직자 선정도 아니였다. 그냥 단순히 회사에 필요한 사람은 남기고 필요없는 사람은 내보내는 거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인사팀에 불려간 사람들이 퇴직통보를 받고 할 말을 잃었다. 걔중에는 평소 일도 잘 하고 한 해동안 성과를 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나름의 근거라고 내세운 것이 조직과 프로젝트 팀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퇴직자로 선정한 것이라고 했다. 퇴직한 사람들은 신세력과 어떤 연줄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분노와 모멸감에 몸을 떨며 동료들이 회사에서 떠나갔다.
회사 경영진은 내년도 예상 실적이 좋지 않아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단행한 거라고 했다. 일단 이익을 내야 하니, 다운사이징을 해서 직원수를 줄임으로써 고정비를 줄이는 것이다. 하고 있는 일의 양은 줄지 않으니, 고통은 퇴직자뿐이 아니라 회사에 남은 사람들에게도 돌아온다. 이것은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고정비 절감을 위한 해고일뿐이다. 증상치료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이, 무조건 팔 다리 자르는 식이다. 그 팔다리가 병든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은 조직을 먼저 재편하고, 프로세스를 리엔지니어링한 이후 다운사이징에 들어가야 한다. 조직의 개편 및 리엔지니어링에 앞서 철저한 검사와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노력은 젼혀 없이, 단순히 경영진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이 구조조정이라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회사 경영진은 작고 단단한 조직으로 거듭 났으니 앞으로 잘 해보자며 남은 직원들을 달랬다. 역시나 말뿐이었다. 그다음 그들이 계획한 것 역시 이전에 자행한 짓들과 다르지 않았다. 회사의 근본적인 역량을 키워서 강한 회사를 만듬으로써 실적을 창출하려는 생각은 1도 없었다. 고정비를 더 줄이기 위해,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다음 순서였다. 그들에게 직원들은 일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배 밑창에 뚫린 구멍을 애써 외면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늦었다. 이제 익사하지 않기 위해 계속 발버둥을 치는 수밖에. 그렇게 발버둥을 쳐서 뽑아낸 땀과 눈물은 그 양아치들이 타고 있는 배의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구조조정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난 이직을 준비했고 계약직 전환 사태 이전에 이미 회사를 떠났다. 운이 좋아서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간간히 회사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있다. 대부분 나이가 많아 퇴사해도 어디 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회사는 꾸역꾸역 굴러가고는 있다 했다. 하지만 내눈에는 그 쇠락의 앞날이 분명하게 보인다. 상부의 비전이 하부에 전달되지 못하는 조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물론 그 비전이 가짜인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양아치들은 장부를 조작하든 어떻게 하든지간에 회사를 팔아먹고 이윤을 남기고 먹튀를 할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피를 다 빨리고 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망하는 것은 필연지사다.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밑창의 구멍을 발견했을때, 그것을 메꾸려는 노력이 조직에 부재하다면 바로 그 때가 탈출시점이다. 같이 죽지 말고,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