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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듬지 Nov 01. 2023

헛꽃

 <헛 꽃>

                                         윤 훈 덕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어머니는 햇살 안은 쪽빛 산수국을 좋아했다. 기일인 오늘 산소에 가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려고 산수국이 줄지어 피어 있는 대병악 오름을 찾았다. 산수국은 가지마다 은하수처럼 촘촘히 박힌 작은 꽃들이 가운데 운집해 있고, 바깥쪽으로는 울타리를 쳐놓은 듯 밝고 하얀색의 헛꽃이 있다. 위화라고 불리는 헛꽃은 올망졸망하게 모여 핀 작은 꽃들이 보이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화려한 모습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유성화가 수정을 하고 나면 무성화인 헛꽃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 뒤돌아 눕고 갈색으로 변한다. 자신의 줄기를 스스로 옭매 영양분이 오롯이 수정된 열매로만 가도록 하는 것이다.

 "형! 떡이야, 빨랑 나와봐"

색깔 고운 떡이 광주리에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본 것은 국민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니 낡은 툇마루에 붉은 광주리가 놓여 있었다. 구수한 떡 냄새는 항시 허기졌던 나를 유혹하기 충분했다. 그 안에는 쑥 향기 가득한 송편과 고소한 참기름을 발라 놓은 바람떡, 깨를 볶아 넣은 형형색색의 깨떡, 노란 한복을 입은 새색시처럼 가지런히 정렬된 인절미 등 많은 떡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웬 떡인가! 어마어마한 신세계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혼자 이 광경을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릴 적 한없이 높아만 보였던 세 살 위 형을 불렀다. “와! 먹자" 말할 틈도 없이 떡을 입에 몰아 넣으며, 나도 먹으라고 턱 시늉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꿀떡도 있다니’ 떡이 입천장에 달라붙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면서도 또 하나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차올랐고 물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 방 안에 작은 미동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부엌을 지나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어둑한 방 귀퉁이엔,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묻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 같은 엄마를 보았다. 순간 고해성사하듯 잘못을 털어놓았다." 엄마, 떡 많이 먹었는데…." 하지만 내 말엔 전혀 반응도 없이 엄마의 머릿결은 계속 흔들렸고, 나는 못 본 척 나와버렸다.

 당시 아버지는 가구 사업에 실패한 후 서울 외곽지인 면목동으로 이사와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 연유로 엄마가 전적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야만 했다. 처음엔 나물을 캐다가 노상에서 팔았고, 종잣돈이 만들어지자 떡 장사를 나가게 된 것이다. 붉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으로 떡을 팔러 다녔으나, 새롭게 시작한 장사가 잘 되긴 만무시리하였다. 다급한 마음에 사무실까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방문한 곳이 부동산 사무실이었고, 떡을 먹는 둥 마는 둥 고스톱에 정신 팔린 노름꾼들은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안중에도 없었다. 오랜 시간을 참다못해 엄마가 계산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엄마는 떡값도 받지 않은 채 광주리를 빼앗아 도망치듯 나온 후, 분을 이기지 못해 집에 와서 울고 계신 것이었다.

 이 이야기의 전 말을 듣게 된 것은 삼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식구과 둘러앉아 추석 송편을 빚으면서였다. 내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오히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며 당시의 상황을 노랫말 외우듯 말씀하시며 쓴웃음을 허공에 던졌다. 

 어머니 가슴에 못처럼 박혀있던 상흔을 괜스레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엄마 나이 마흔. 허기진 빈속의 생마늘처럼 얼마나 아렸을까. 지금도 송편을 보면 어둠 속에 쪼그린 채 울고 있던 젊은 엄마 생각이 아련하다. 추운 겨울 썰매를 타고 들어오는 날이면 어름 덩이보다 차가운 발을 허벅지에 감싸 안으며 녹여주셨던 엄마, 손등이 터져 붉은 살이 갈라지면 쇠기름을 발라주던 엄마, 가을배추를 추수하고 난 자리를 찾아다니며 파치를 주어 배춧국을 끓여주던 엄마. 헛꽃처럼 자기의 인생은 오직 자식과 지아비를 위해 헌신하던 엄마가 탈피각처럼 유년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억척스러웠으나 결코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던 어머니의 단아한 모습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산수국을 찾아 떠난다.

 9월에 다시 만난 산수국은 씨방마다 가득 열매를 맺고 있었지만, 봄에 만났던 헛꽃의 단아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희끗희끗 빛바랜 흰빛은 갈색이 되었고, 듬성듬성 찢겨진 초라한 각피만 남아 있었다. 헛헛한 마음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 헛꽃을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매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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