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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듬지 Oct 07. 2023

금오름을 오르며

추석 긴 연휴를 뒤로하고 신령스럽다는 금오름을 올랐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정상부까지 포장된 길은 오르머들에겐 반갑지 않은 길이다. 이에 마을에서 좌측으로 오르는 ‘희망의 숲길’이란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봄 오름에서 만난 꽃들은 탄생의 경외함이 있다면 가을 산책길에서 만난 꽃들은 겸허하고 경건함을 느낀다.

 들머리엔 흔해 빠진 검질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엔 검질로만 뭉퉁그려 불렀지만 지금은 오름반에서 배워 알게 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주름조개풀. 이름을 불러주니 듣는 너보다 부르는 내가 더 행복했다. 조금 오르자 산박하가 보랏빛 웃음을 지으며 일제히 열병식을 치르고, 곧이어 보라돌이의 대장이라도 되는 듯 우뚝 선 당잔대가 미소로 맞이한다. 이삭여뀌도 가을 하늘에 붉은 자태를 뽐내고 오이풀은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해 허리를 곧추 세웠다. 산부추며 며느리밑씻개도 낮게 편 채 선홍빛 꽃봉오리를 살며시 내밀고 송장풀은 입을 벌린 채 붉은 혀를 내밀며 가을이 깊어 가는 것을 힘겨워하고 있다. 하얀 종지에 노란 술을 가득 담은 듯한 차나무꽃도, 푸른 산속에 잘 보이려고 붉게 립스틱 칠한 선이질풀하며 조막손으로 나를 봐달라고 손짓하는 쇠별꽃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어 마냥 눈 맞춤한다. 가을 산은 꽃과 바람과 하늘이 있고 사이사이 구름이 추임새를 넣어 그 맛을 더한다. 

정상엔 깊이 52m의 원형 분화구가 있다. 예전에 많았던 물은 이제 습지화 되어 양서류가 알 낳을 수 있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결초보은의 고사성어를 만들 낸 수크령이 막춤을 추며 우리를 유혹한다. 너도 나도 수크령과 하나 되어 셔터를 눌러 낸다.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사랑이 샘솟아 말라가고 있는 산정화구호를 가득 채울 것 같다. 분화구에 하늘이 숨어 있다. 하늘과 땅이 내통하고 있다. 하늘이 파란 기분이면 분화구도 상쾌한 모습으로 하늘이 먹구름을 머금고 있으면 분화구도 어두운 마음으로 그 아픔을 같이한다. 작은 분화구는 넓은 하늘을 사랑으로 품어준다. 오름은 우리에게 사랑을 심어주고 고개 숙이는 겸손함을 가르친다. 그래서 또 오름에 오른다. 오늘은 해종일 파란 마음이 춤추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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