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된 날

[임신 4주차] 2025.02.26에 작성한 일기

by 따옴표 필름

최근 생리 시작 직전처럼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했다. 주말에는 집 밖에 안 나가고 잠만 잤다. 주말이 지나고 평일이 되어도 며칠째 생리를 하지 않아 처음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다. 아침에 일어나 첫 소변으로 테스트를 했고, 테스트기에 소변이 닿자마자 거의 30초 만에 두 줄이 떴다. 너무 빠르게 그리고 선명하게 두 줄이 떠서 오히려 테스트기가 고장난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는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움보다는 기쁨과 설렘이 컸다. 테스트기를 닦고 캡을 씌우고 거실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때 남편은 안방 화장실에 있었는데, 남편이 거실로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그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닫힌 안방 문 앞에서 테스트기를 손에 쥐고 몇 번을 서성였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나오자마자 두 줄 뜬 테스트기를 보여줬고, 남편은 나랑 처음 사귀기 시작한 순간처럼 흐뭇한 웃음을 환하게 지었다. 우리가 부모가 된다니!


곧바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한 친구한테 카톡을 했다. 친구는 너무 고맙게도 바로 내게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었고, 오늘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서 평소 종종 가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고 상황을 설명드렸다. 와서 초음파로 확인도 가능하고, 만약 초음파로 뭔가 보이지 않는다면 피검사를 통해 당일에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오전 업무를 수행하고 점심으로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었다. 이것저것 하고 나니 금세 오후 2시가 넘었고, 남편이 운전해서 산부인과에 갔다. 나 말고 다른 손님들이 있어서 대기시간이 좀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기대감이 컸지만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했다. 내 차례가 되고서 선생님께 최근 7~8개월 정도의 생리 시작 날짜를 말씀드렸다. 내 주기는 꽤 일정한 편인데 이번 연초부터 약간의 주기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질 초음파를 해주셨다.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선생님이 차분하게 잘 설명해주셨고, 결과적으로 임신이 맞다고 하셨다. 증명서를 가지고 이것저것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지금부터라도 엽산을 꼭꼭 챙겨먹으라고 하셨다. 임신을 계획하고는 있었지만 정보가 다소 부족했던 나는 "엽산은 남편만 먹는 거 아니었어요?"라고 했고, 지금 생각하니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친절하게 지금부터 산모가 먹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초음파 사진을 보니 후추 한 알을 닮은 0.6cm의 아주 작고 귀여운 아기집과, 그보다 더 작은 눈꼽만한 난황이 보였다. 착상 위치도 아주 괜찮다고 하셨다. 조그만 아기집과 난황을 보는데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위치도 딱 좋은 위치에 자리잡았는지 기특하기도 했다. 아기는 아직 너무 작아서 형체도 볼 수 없었는데, 다음 주에 오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진짜 빠르게 성장하는구나! 진료실에서 나와 남편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다. 내가 그렇듯 남편도 크게 실감이 나진 않아 보였지만, 왠지 남편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신기함 그리고 약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가장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게 된 첫 순간이리라. 안내데스크 간호사님도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면서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정말 첫 임신의 사실을 이 병원에서 알게 되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오는 길에 얼떨떨한 이 감정을 남편과 함께 이야기했고, 마트에 들러 소고기와 야채를 사서 집에 왔다. 날씨는 초봄처럼 따뜻했고 노을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저녁을 맛나게 먹은 뒤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어 안도했다. 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우셨다. '잘했다, 축하한다'를 반복하셨다. 당일에 빠르게 연락 드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에서 한 선택 중 잘한 일 10위 안에 들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오늘 나는 가장 친한 친구 세 명, 그리고 엄마에게만 임신 소식을 전했고, 새벽 1시가 넘어 잠을 잤다. 자려고 누웠을 땐 몸살 기운처럼 몸이 찌뿌둥했고 생리를 시작한 것처럼 아랫배가 콕콕 아프고 불편했다. 약간 낑낑거리다가 잠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작업 공간이 필요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