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힘들 때 꺼내 쓰는 마음의 기술
갑자기 온몸이 쑤셔오고 두통에 기침이 시작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감기쯤이야 며칠 앓고 나면 그만이지 하시나요, 아니면, 얼른 병원으로 달려가시나요? 감기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 감기를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릅니다.
이번 감기는 좀 달랐습니다.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제게서 무엇인가를 ‘일깨우려는 방문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여기저기서 감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급 친구로부터 독감을 옮았는지 둘째는 월요일부터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 멀리서 군목부중인 첫째도 독감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둘째가 나을 때 즈음에 셋째와 아내가 감기를 시작하고, 첫째에게 옮겨간 후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차례가 돌아옵니다만, 이번에는 나에게서 바로 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이 멀리 있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묘한 기분과 함께 걱정이 깊어졌습니다.
제일 먼저 기운이 쳐지면서 하필 손이 닿지 않는 등 중간과 목 뒤쪽에서 근육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머리가 아파오고 밤이 되면서는 목 안쪽에서도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든 괜찮아질 거야 하며, 든든하게 챙겨 먹고, 따듯한 물도 자주 마시고, 잠들기 전에 소금 한 두 알을 혀 밑에서 녹여 먹던 나만의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렸습니다.
하루가 지나 토요일 오후가 되면서 기침에 콧물, 가래까지 더해졌습니다. 심지어 전방에 있는 아들은 고열로 인해 더 힘들어했습니다. 이번엔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5일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명상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방심한 틈에 치고 들어온 감기가 야속하기도 하고, 감기쯤이야 하며 자만하던 나에게 겸손하라고 혼내는 것 같아 후회스럽기까지 합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루미는 '온갖 감정과 사건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라고 했는데, 감기도 마찬가지겠군. 마음챙김으로 이번 감기를 맞이해 봐야겠다.'
그동안의 마음챙김 수련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지도 내심 궁금해졌습니다.
평소라면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하며 스스로에게 화부터 났을 텐데, 이번에는 처방전을 잘 따르기로 합니다. 지난 2주 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것도 며칠 전 과음했던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겠지만, 잘잘못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쓸데없는 소모전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덕분에 감정적인 싸움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 있을 수업 걱정 또한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까'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주의를 몰고 갔습니다. 이미 걸려버린 감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후회하고 거부한들 바뀌는 건 없습니다. 수용은 체념이 아니라, 불필요한 싸움을 멈추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첫 번째 처방을 지킨 덕분일까요. 다음 단계는 ‘통증과의 관계를 다시 맺기’였습니다.
두통과 근육통이 점점 심해지면서 수업 걱정도 더 커집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 보지만 허리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통증을 통증으로 바라보자, 통증과 괴로움을 분리해서 보자고 되뇌지만 현실의 통증은 모든 의도를 집어삼켰습니다. 산책을 해도 따뜻한 물을 마셔도 별반 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아내가 건네준 두통약이 통증을 진정시켜 주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나니 비로소 미련하게 고집 피우면서 힘들어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통증을 통증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한 한계 안에서만 허용되나 봅니다. 그래도, 실험적으로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 주었습니다.
밤이 되면서 다시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코가 막히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잠이 들면 낫겠지 싶어 누웠지만, 등과 목 부위의 근육통이 다시 올라옵니다.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지고 잠이 저만치 물러납니다.
차라리 바디스캔으로 몸을 이완시켜고, 통증을 통증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왼쪽 발가락에서 시작한 바디스캔이... 한동안 멈춥니다. 정신을 차리는 듯하다가... 다시 아득해지더니 이번에는 잠을 깨려 용을 씁니다. 잠, 깨어남, 집착과 애씀 사이를 헤매다 해가 뜨고 나서야 잠에 들었습니다. 애쓰는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됩니다. 몸이 필요한 것을 잘 살펴 듣고 제때 응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낮 시간의 증상은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없이도 수요일까지는 회복될 것 같은 막연한 긍정성이 슬그머니 올라왔습니다. 감기를 우습게 보는 습관적인 태도는 잡초처럼 다시 살아나서 나를 괴롭게 합니다. 그러다 영양제라도 맞으면 회복이 빠르지 않을까 하는 아내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회복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임을 그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은 스스로를 챙겨서 보살피게 합니다.
수요일, 수업 후에 손윗 동서가 운영하는 고깃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차 한잔만 마시고 돌아 올 생각이었지만, 한번 시작된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다 큰 조카들도 모여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고기를 굽고 맥주도 차려집니다. 구미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를 앞에 두고 맥주 한잔을 못하다니. 속에서 슬며시 부화가 치밉니다. 수업도 잘 끝났는데 맥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함이 올라옵니다.
사실 감기약에 맥주는 간에 치명적입니다. 괜한 객기를 눌러 내리고 나니 대화는 오히려 더욱 따뜻해집니다. 맛있는 고기와 숙면 때문인지 아침에는 더욱 개운하게 일어났습니다. 작은 유혹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늘 쉽지 않지만, 용기와 선택이 쌓여 몸과 마음의 회복을 이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음챙김은 결국,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듣고 그 신호에 지혜롭게 응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열흘 걸린다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기침이 남아 있습니다. 몸이 아플 때면 우리는 참거나, 밀어붙이거나, 외면하기도 합니다. 정작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은 감기 자체보다는 감기와 맺는 관계로 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청객과 같던 감기는 이제 몸이 보내는 신호에 늘 귀를 기울이라고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로 보입니다.
결국, 마음챙김의 처방전은 언제나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