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혈압을 목표로 한 나의 새해 연습
올해 주요 계획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나요? 1월의 반이 지나는 지금, 벌써 작심 삼일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겠지요?
아침 8시, 1킬로미터 남짓한 송정 해수욕장은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해변을 치우는 주민들 뒤로 노란 아침 햇살을 즐기는 괭이갈매기가 무리를 지어 있습니다. 스러지는 파도의 끝자락을 조용히 맨발로 밟아가는 남자와 손가락 브이를 만들어 사진 찍는 서너 명의 관광객들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조용히 혼자만의 속도로 해변을 달리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다 공기도, 비로 축축해진 모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주일째 저는 아침 해변을 달립니다. 작년 말부터 혈압이 정상과 고혈압의 경계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너도 약 먹고 있지'하는 친구들의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 저에게는 '너는 약 먹지 마라'는 경고가 되어, 올해의 목표로 '건강한 혈압'을 정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있다는 믿음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안을 찾았습니다. 아침 달리기와 저녁 마음챙김 걷기와 요가, 그것이 올해 저의 생존 다짐입니다.
일주일 밖에 안 됐는데 웬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벌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허리와 다리의 힘이 올라왔고, 걸음걸이도 앉는 자세도 더 반듯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오른쪽 발목이 조금 시큰하여 파스를 붙이긴 했지만, 적절히 조절하면 무리 없을 듯합니다. 내친김에 팔 굽혀 펴기도 시작했으니, 변화가 일어난 건 확실합니다. 갓 제대했을 때는 한 팔 팔 굽혀 펴기를 10개까지 했다는 '라때'의 기억도 몸에서 다시 살아나고, 이렇게 몇 달이 지나면 턱걸이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시작은 이렇게 힘찹니다.
지금 쯤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나도 그 기분 알지', '원래 시작할 때는 다 그래', '작심삼일이야' 하기도 하고, 작심삼일을 계속 이어 붙이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제안도 생각납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것이라는 걸요.
'시작'은 머릿속에서 일어나지만, '계속'해서 완성하는 것은 몸에서 일어난다.
이번에는 마음챙김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중요한 두 가지는, 현재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것'과 원래 의도한 것을 계속해서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어쩌면 마음챙김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을 잘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의 새해 목표인 '건강한 혈압'을 예로 들어 풀어보겠습니다.
모든 변화에는 저항이 따릅니다. 익숙함, 관성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침대에서 일어나는 여정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른 아침의 침대 온도는 36.5도 몸과 하나가 되어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벗어나는 것은 심지어 위험보이기까지 하여, 마음에서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오늘의 중요한 일 중에서 잊은 건 없을까 궁금해지고, 몇 분만 더 누워있으면 몸이 더 개운해질 것도 같습니다. 심지어, 지금 일어나면 감기가 걸릴 것 같은 황당한 이유도 그럴듯하게 여겨집니다. 결국, 몇 번의 알람을 더 끄고 나서야 허둥지둥 출근준비를 합니다.
매일 아침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차에 시동을 다시 걸면서도 괜히 오늘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더 급한 일이 있지 않을까, 날씨는 괜찮을까,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하며, 해변으로 가는 것을 막아서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바로 눈앞의 상황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건강한 혈압'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지금의 귀찮음으로 혈압약을 먹게 되는 상황은 너무나 최악입니다. 그리고 해변 달리기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 냅니다. 나 자신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계속해서 들려줘야 합니다. 그러면, 차는 자연스럽게 해변으로 향합니다.
해변 중간 정도에 주차를 합니다. 그리고, 인도 위를 천천히 걸어 해변 끝으로 가면서 오늘 모래사장 전체를 바라봅니다. 파도와 햇볕, 불어오는 바람과 사람들, 이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긴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대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어쩌면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출발 지점에 조금씩 더 다가갈수록 나도 서서히 풍경의 일부가 되어 갑니다.
아직 그늘에 덮인 출발지점에 서서 햇살이 가득한 반대편 끝 지점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새깁니다. 나는 지금 '달리는 인간'이다.
해변 반대편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달리기만 할 겁니다. 걱정도 잠시 미뤄두고, 이후에 해야 할 일도 잠시 내려놓고, 이 순간 나는 '달리기' 자체가 되어 볼 겁니다.
작년 가을에 밤 달리기를 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매주 두 번은 10킬로미터를 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곧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두 번이 한 번으로 줄어들고, 결국, 기온이 내려가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한참이 지나 다시 시작하려니 10킬로미터의 거리는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의 우렁찬 기세만으로는 오래 지속하기는 힘들더군요.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수준은 '너무 쉽지도 무리하지 않는' 정도입니다. 운동의 크기나 강도가 보다는 오래 지속하는 것에서 성취감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래 해변에서는 우선 느린 속도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모래의 상태와 몸의 상태를 알아봅니다. 속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해수욕장 끝까지 쉬지 않고 동일한 속도로 달릴 수 있는지 가늠해 봅니다. 어쩌면 포장된 길 위에서의 빠른 걸음 정도의 속도가 해변에서는 적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달려가면 몸이 더워지며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마음챙김 요가를 할 때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해당 동작에서 나의 안전한 범위가 어디인지, 한계 지점이 어디인지를 계속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한계 근처에서 머무를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마치 나만의 실험실 과학자가 된 듯이 한계치를 탐험하다 보면 어느새 한계가 늘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편함은 곧 성장의 시작점입니다.
경주하듯이 치열하게 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도 않고,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음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많이 경험해 보셨겠지만, 만연한 성과 주의는 결과만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 쫓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치고 번아웃(burn-out)이 오기도 합니다. 힘들고 즐거운, 그 모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순간들은 바로 과정 속에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불굴의 의지를 세우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해주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한 번의 경주가 아니라면 달리는 순간 자체를 좋아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달리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입니다. 먼저 달리는 자세입니다. 상체는 바르게 세워져 있는지,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지, 다리의 높이와 보폭은 적당한 지도, 양 발에서 느껴지는 압력은 무리가 되지 않고 균형이 맞는지도 알아봅니다.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즐기면서 달릴 수 있는 호흡의 수준도 알아봅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도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머리와 팔에서 혈액이 모두 빠져나간 듯이 멍해져 마치 달리기 로봇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걱정과 잡생각에 빠져 무작정 달리고만 있다면, 달리는 행위로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팔이나 다리의 움직임이나 호흡의 상태로 주의를 돌려 오고 나면 다시 정신이 맑아집니다.
어느 부위에서 긴장이 느껴지고 또 힘이 느껴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다 보면 달리기에 흥미가 더욱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생생하게 깨어서 달리는 것입니다.
해변 끝에 다다르면 일단 잠시 숨을 고릅니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과 수면에 밝게 반사되는 햇볕도 잠시 즐깁니다. 그리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자유로움' 한 숟가락을 더해 보리라 마음먹습니다.
지그재그로 달려 보기도 하고, 때로는 옆으로 그리고 뒤로 달리기도 합니다. 육상 선수가 투 스텝으로 가볍게 점프하는 것도 흉내 내 봅니다. 파도 소리도 잠시 들어보고, 얼굴에 와닿는 따뜻한 햇볕도 느껴봅니다. 반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경찰관에게 인사도 건넵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면서 달리는 겁니다. 호기심이 향하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몸과 마음도 계속 따라갑니다. 자유롭게 달리는 사람이랄까요.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출발 지점에 돌아오면, 잠시 뒤를 돌아서 방금 달려온 해변을 바라봅니다. 달릴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도 더 많아져 있습니다.
멈추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볼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 흘러내리는 땀과 화끈 거림, 가슴은 더 넓어져 있고, 몸무게도 500그람 정도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뭔가 해 낸 듯한 성취감과 후련함, 그리고, 나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감사함도 지나갑니다. 비록 호흡이 아직은 조금 거칠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고 고요합니다.
달리기의 여운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죽도를 한 바퀴 돌아 산책합니다. 긴장하던 다리의 근육도 제법 편안해지고, 호흡은 깊고 시원합니다. 속도가 늦어진 만큼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든든하게 위에서 내려보는 소나무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키 작은 대나무들,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을 보면서 인사도 건넵니다. 내일도 들러 달라는 파도의 유혹을 거부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풍경 속에서 풍경과 하나가 되어 아침 루틴을 마무리합니다.
달리는 즐거움을 발견했다면 달리기를 좋아할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셈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건강에 대한 불안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기대감과 신뢰감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욱 확실히 하자면 달리기로 인한 효과를 생활 속에서 스스로 찾아보는 것이 도움 됩니다. 일과 후에 피로감이 줄어들었다거나, 집중력이 늘어났다거나, 일상생활 속 자세가 더 반듯해지고 있었습니다. 삶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들은 보려고 할 때에만 스스로 드러냅니다. 많이 발견하면 할수록 달리기를 더욱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욱더 즐기게 됩니다.
저의 원래 목표는 달리기가 아니라 '건강한 혈압'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염두에 두고 있으면, 서서히 달리기를 넘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이제는 팔 굽혀 펴기도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이대로 가다 보면 턱걸이로도 발전할 것 같습니다. 여름 해변에서 시선을 강탈하는 복근은 너무 멀리간 이야기일까요?
하지만, 또 두고 볼 일입니다. 지금처럼만 계속한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