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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배는 똥배

몸의 기억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따뜻한 아랫목에서 숙성시킨 후 팥고물을 넣고 쪄낸, 희뿌연 김이 나는 누런 ‘빵떡’이 있다. 요즘 제과점에서 파는 단팥빵과 호빵의 중간 즈음의 시골 버전. 산골에서 자란 나는 추운 겨울이면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시는 빵떡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점빵(구멍가게)도 하나 없는 산골 마을이다 보니 부모님의 고된 땀으로 맺은 군고구마, 찐 감자, 삶은 강냉이는 가끔씩 나의 군것질을 그리고 한 끼 저녁식사를 대신하곤 했다. 마냥 꼬맹이였던 나에게는 그 풍요로운 간식보다는 돈을 주고 산 밀가루가 들어간 배추전, 라면 그리고 빵덕이 백배는 더 맛있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의 입이 아빠가 직접 텃밭에서 키워서 만든 부추전보다, 햄버거, 피자, 치킨, 라면을 더 좋아하여 때론 서운하고 야속하다. 그 시절 어머니도 야속하게 느끼셨을까.


형님들 누님들이 모두 도시로 전학 가고 난 후 나는 3학년이 되어 홀로 시골에 남겨졌다. 해도 짧고 외로운 추운 겨울날, 10리 남짓 하굣길에 빨개진 나의 두 볼은, 어머님이 직접 만드신 빵떡위에서 눈 녹듯이 녹아내린다. 그저 천국이었다. 저녁을 대신하여 한입 가득 베어 문 빵떡, 달달한 팥고물, 입안에 가득 퍼지는 밀가루의 벅참. 씹을 겨를도 없이 다음 빵떡을 집어 들고 먹는다. 살얼음 살짝 낀 찬물은 그저 거들 뿐. 그렇게 그저 황홀하기만 했던 그 겨울밤이 지나고, 나는 배탈이 났다.


다행히 학교에서 돌아온 후부터 속이 메스껍다. 어지럽다. 먹으면 토한다. 내 몸에 손만 닿으면 짜증이 나는 초절정 민감 모드로 돌입한다. 너무나 힘들다. 10년 남짓 쌓아올린 나의 삶이 통째로 무너질 듯한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이다. 전에 없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얹힌 (체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세게 얹힌 것이다.


나는 이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먼저 나의 귓볼을 만지실 것이다. 그러면 귓볼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의 손길에 차갑게 반응한다. 그리고, 어머님는 나의 배를 만진다. 그러면, 나는 토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어머니의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기 바쁘다. 그러면, 확정이다. 얹힌 것이다.


어머니는 도방 구리 (반짓고리)를 찾아서, 이불을 꿰매던 큰 바늘이 아니라, 옷을 기우덧 좀 더 가느다란 바늘을 찾는다. 바늘 귀에는 여지없이 하얀 실이 매달려서 하늘 거린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틀어서 나의 주의를 돌린 후에, 왼쪽 팔을 어깨부터 아래로 쓰러내린다. 피를 모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멀리 돌린다.


어머니는 나의 엄지 손가락 첫째 마디를 굽혀 잡으신 후에, 손가락 등에 바늘을 꽂는다. 한 번, 단 한합에 바늘은 적당한 깊이로 나의 여린 피부를 뚫고 들어가고, 나는 내 손가락은 시꺼먼 피를 내뿜는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나는 명치에서부터 싸늘하게 아래로 쓰러 내려가는 희열을 느끼면서 트림을 한다. 그리고,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끝.


좀 더 어릴 때는 사탕 하나를 보상으로 주셨는데, 이제는 물 한모금이면 족하다. 나는 바늘의 매정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때로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며칠을 견뎌내어 괜찮아지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체한 것은 전에 없는 위급, 응급 상황임을 직감한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딴다. 피가 나오질 없는다. 직감적으로 한 방울도 안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절망적이다. 다음은 오른 쪽 엄지손가락 차례. 그래도 안된다. 나는 맥없이 나머지 여덟 손가락도 어머님께 맡긴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바늘은 날카롭다기보다 무딘 느낌이다. 그래도 차도가 없다.


이번에는 발가락이다. 엄지발가락, 가운뎃발가락, 왼쪽 오른쪽. 10개의 발가락이 있음을 바늘의 느낌으로 알아차린다. 더 이상 따야 할 발가락도 손가락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어머니는 어느 순간에도 막내아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 차원 높은 스킬이 발휘된다. 객구를 물린다.

종지에 좁쌀을 담고, 숟가락을 세워본다. 참 신기하게도 숟가락이 전봇대 마냥 우뚝 선다. 확정이다. 이건 객귀다. 객사한 귀신이 너무 배고픈 나머지 내가 좋아한 빵떡에 깃들고, 그걸 먹은 나에게 귀신이 들린 것이다.


먼저 응급처치가 시작된다. 대접에 찬물을 담고, 그 위에 젓가락으로 열십자를 만든다. 그리고, 부엌칼의 칼끝을 나의 앞니 사이에 대고 열십자 네 귀퉁이에서 숟가락으로 물을 떠서 비스듬한 칼 몸통에 천천히 붓는다. 나는 칼을 타고 들어온 물을 마신다. 의식에 긴장한 나머지 나는 물 맛이 어떠했는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물에서 칼 맛을 느꼈던 듯하다. 꽤나 섬뜩하고 조심스러운 이 의식에 나는 초 긴장 상태로 어머니의 지시를 따른다.


그러고는 밥을 하여, 바가지에 물과 함께 담고, 부엌칼로 휘휘 젓는다. 그리고는 그 칼을 집어서 마당에 던지면서 ‘객구야 물러가라’ 하는 어머니의 청천벽력같은 명령이 떨어진다. 다행히 칼끝은 마당 입구를 향하여 바닥에 떨어진다. 성스러운 치료 의식이 마무리되고, 객귀는 물러간다.


의식이 진행되는 내내 초긴장과 초집중을 하고 있던 10살짜리 꼬마는 의식이 끝나고 나면 긴장이 풀린다. 풀린 긴장과 함께 속이 편안해진다. 다 나은 것이다. 객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귀신도 물리치는 어머니의 위대함이었다.


지금 어머니는 병원에 누워계신다.

늦은 밤에 화장실에 가다가 실수로 넘어지면서 7개의 갈비뼈에 금이 갔다. 큰형님의 바통을 이어서 간병을 하기 위해 들어선 병실은 너무나 좁다. 덥다. 갑갑하다. 눅눅하다. 병실 침대 위에 환자복을 입으신 어머니의 눈은 시커멓고, 어깨는 추욱 쳐져 있고, 목소리는 힘이 없다. 마음이 짠하다.


드시는 약이 참 많기도 하다.

당뇨약, 심장약, 위장약, 식도염 약, 진통제, 안약, 기침약, 소화제. 아침에 한 번 먹는 약, 식후 30분 세 번 먹는 약, 잠자기 전에 먹는 약. 알약, 물약. 빨간약, 노란 약, 흰 약. 알약 하나를 삼키기 위해서는 물을 두 모금 마셔야 한다. 모두 자기만의 고유한 시간과 권리를 허락받은 약들. 매일 각자의 시간을 지켜서 먹어내기엔 벅찬 약들. 어릴 때 객구를 물리던 그 위대한 어머니는 사라지고 막내아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보통의 할머니만 병실에 누워 있다. 너무나 작아진 어머니. 그저 서글퍼서 내 눈은 붉어진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갈비뼈의 통증은 많이 줄어들어 돌아누울 수는 있게 되었지만, 이젠 맥이 없다고 하신다. 힘이 없고, 밥맛이 없고, 속이 불편하고 메스껍고, 약을 먹으면 속이 아프다고 하신다. 점심 약을 안 드시고도 간호사에게는 알리지도 않으신다. 병실이 조금 더워도 간호사실에 부탁을 않으신다. 살짝 화가 올라온다. 그래도 괜찮다 하신다.


속이 계속 불편하다고 하여, 내가 급제안을 한다.

‘배를 만져 드릴까요?’

‘그렇게라도 해 볼까, 그럼.’

‘어릴 때 어머니 배를 만지면서 잠자고 그랬는데…’

‘요즘도 아기 배는 똥배 하고 그러데, 테레비에 나오더라.’

‘앞으로 백 년이 지나도 아기 배는 똥배일껄요, 아마.’


어릴 적 추운 겨울에 어머니 배를 만지고 잠을 청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어머니 배는 빵떡처럼 참 따뜻하고 보드랍고 좋은 냄새가 났다. 참 편안했다. 한 번은 어머니 배가 이렇게 나온 이유가 내가 배를 나무 많이 만져서 그런가 하여 미안했던 적도 있었다.


어머니 배를 만진다. 명치 위에서 조금 누르며 쓰러내리고, 넓은 배는 둥글게 둥글게 돌리면서 배를 마사지한다. 배가 차갑다. 얇다. 아이 다섯을 나은 배는 터서 그런지 여기저기 골이 느껴진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가스가 느껴진다. 한 20여 분 동안 계속하다 보면. 어머니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하신다.

‘팔이 아프지?’

‘이 정도로 힘들면 팔도 아니지요.’


어머니 배를 만지면 만질수록 내가 트림을 한다. 내 배를 만진 것도 아닌데 내가 트림을 한다. 참 신기하다.

내 배는 아직 기억하고 있나 보다. 객구 물린 아들이 잠든 깊은 밤중, 속으로 ‘아기 배는 똥배’하시면서 이불 속 아들의 조그만 배를 쓰다듬으셨던 어머니의 온기를,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어머니 배 속에서의 하나였던 그때를. 그리워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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