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챙기며, 나답게 시련을 넘어서기
by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마음챙김은 ‘시’를 닮아 있습니다.
독자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시’ 위에 조용히 포개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챙김 또한 스스로의 삶의 경험을
마음챙김 위에 겹쳐 생생히 살아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러자면 잠깐 동안이라도 스스로를
침묵 속에 넣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챙김이 삶 속에서 ‘시’처럼 피어날 때까지 말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저에게는
‘나 자신’으로 읽힙니다.
흙으로 만들어져서인지는 몰라도
‘나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잘 해낸 것들보다는 실수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부서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기를 쓰고 경쟁했던 학창 시절,
손해보지 않으려 잔머리 굴리던 사회 생활,
유능해 보이려 약삭빨랐던 회사 생활,
부서지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더 힘들다는 이제는 압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요?
나를 둘러싼 생각의 껍질을 깨야만
병아리가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채찍질 대신 스스로 다정히 쓰다듬을 줄 알았더라면,
산산조각 난 듯한 지금의 모습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온 이런 나를
지금도 누군가는 닮으려 한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삶에 ‘만약에~’는 없으니까요.
그저, 이제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일겁니다.
’남들처럼’ 대신 ‘나답게‘ 말입니다.
좀 더 기다려 주고, 있는 그대로를
다정하게 안아주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내는 것도 만만찮은데
웬 ‘나답게’냐 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 남들‘이라는 말속에
‘나 자신’이 들어있다 걸 알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속에서 우리는 서로 물들어갑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참 반가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