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빨간 토끼의 아침

불안 괴물과 함께 걷는 평범한 하루

눈 빨간 토끼의 아침


아침에 눈뜬 순간부터 이미 쫓기고 있었다.


형체가 없는 안개 괴물 같은 불안

나는 이미 그 속에 들어와 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돌려 본다.

아무 소리도 없다. 다행이다

아직 긴장해야 한다고 몸이 말한다.


작게 웅크린 채 숨 쉬는 소리마저 숨긴다.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 해...

불안의 실체를 본 적이 없어

더욱 불안하다.


어디서 나타날까,

어떻게 잡아먹을까

그 괴물은 분명 압도적일 것이다.


실체를 알 수 없어

벗어날 수도 없다.


오늘도 불안하다.




이런 불안한 아침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안과 걱정이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년이나 더 넘게 같이한 아내와 영화제에 가면서도 그랬거든요. 옷을 고르면서도 괜히 아내 눈치를 살피고, 지각할까 봐, 내가 고른 영화가 재미없을까 봐, 주문한 음식이 맛이 없을까 봐, 모든 판단과 결정의 순간에 불안과 걱정이 함께 합니다.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불안과 걱정이 된 것을 잘 알지만, 마뜩잖은 결과에 스스로를 책망합니다.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늘 어두운 결말 쪽이었습니다. 불안, 걱정, 실패, 실망, 비난, 좌절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실제로는 많은 순간들이 지나갔다는 것을요.


잠시 스쳐간 시원한 바람과 아내의 눈웃음, 귀여운 불평과 영화 속에 빠져든 순간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 모든 순간들을 더해보면 결코 어두운 결말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작은 순간들의 합은 항상 긍정인 결말입니다.

안개 속이어도, 괴물의 정체를 몰라도 지금 내 옆에는 항상 작은 빛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불안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