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국 @못골

by 땡비

2021년 12월 1일 비 오는 동암마을 오후

“꽃 팔자 버드나무 팔자라고? ”

햇볕 밝고 기름진 곳에 싹터 자라면 풍성하게 마음껏 기개를 나타냅니다. 바위틈 어두운 음지에 자리하면 몽그라져 비틀어진 힘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연이 정해주는 자리에서 모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작년에 감포 해국을 촬영하러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컷 날려 보았습니다. 그냥 꽃으로 생각하고 별 다른 의미 없이 촬영 후 하드 깊숙이 저장해 버렸습니다.


'해국 촬영을 굳이 감포까지 가야 하나? 하나? 오늘은 우리 집 근처에도 해국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근처 바닷가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관심 갖고 보아야 찾아지는 모양입니다. 드문드문 여기저기 이미 지기도 하고, 피기도 한 해국들이 반겨 줍니다.


꽃 촬영을 하며 느끼는 점은 어느 꽃은 "자신을 촬영해 달라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저에게 해줍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제부턴가 사진에 쓸쓸함이 배어들기 시작하는군요. 젊어서는 간간히 촬영하던 뒷모습 사진이 지금은 부쩍 많아지고 앞 공간보다는 뒤 공간을 많이 남기는 인물 구도도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홀로 서있는 나무가 전해주는 감성도 남다르게 와닿습니다. 한번 촬영으로 만족할 만큼 능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소재나 장소가 정해지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가고, 어느 정도 만족한 사진이 나올 때까지 집착하는 것을 보면 '나는 참 많이 부족한 사진사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해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날은 해국의 자태에, 다음 날은 해국이 살아가는 환경에, 다음 날은 비 오는 날 해국의 처절함에 초점을 맞추어 봅니다. 한꺼번에 종합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단계를 밟아 촬영하게 되는 단편적 사고가 그렇습니다.


양지바르고 기름진 좋은 장소를 마다하고, 바위 틈새 짠물 스며드는 돌 사이, 해풍에 물보라가 날아와 얼굴을 소금 칠하는 왜 이런 척박한 곳을 골라 이 꽃은 자랄까?


꽃들이 대지에서 모두 사라진 가장 늦은 계절에 보라색 띤 모습으로 나타날까? 바라보면 철분 때문에 주황으로 물든 돌들 틈에서 독야청청하듯 보라색 꽃을 피우는 해국의 모습이 기적 같습니다.


한 해도 다가는 12월, 겨울비 오는 바닷가, 파도는 작은 바위섬을 삼켜버릴 듯 굉음으로 달려들고, 바람에 날려 오는 소금기 저린 바다 물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해국은 그 환경을 악착스레 이겨내고 있습니다.


우리 살아감에는 때로 닥쳐오는 불행을 피해 가는 방법이라도 있지만

해국은 온몸으로 그냥 받아들입니다. 산다는 것이 늘 전쟁입니다.

그러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지나 놓고 보면 우리들 인생도 때로 해국처럼 살아가는 날들도 있습니다.

바위 틈새 짠물 스며드는 돌 사이, 해풍에 물보라가 날아와 얼굴을 소금 칠하는 왜 이런 척박한 곳을 골라 이 꽃은 자랄까?
꽃들이 대지에서 모두 사라진 가장 늦은 계절에 보라색 띤 모습으로 나타날까?
바라보면 철분 때문에 주황으로 물든 돌들 틈에서 독야청청하듯 보라색 꽃을 피우는 해국의 모습이 기적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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