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바이사바이 vs 빨리빨리

워킹 비자 받는데 6개월이 걸린 건에 대하여...

by 땡비

그냥 무비자로 일하면 안되나요?

우리나라 국민은 태국에서 무비자 체류 3개월이 가능하다.

나의 업무 기간은 2개월이다. 무비자로 근무 가능할까?

그랬다면 서류 작업이 한결 수월했을텐데...!


내가 일하게 될 회사에서 워킹 비자로 진행했으면 한다고 여러 서류를 요청하였다.

무더운 8월 광복절 연휴를 앞두고 시간이 지체될까봐 부랴부랴 서류를 보냈다.


놀랍게도, 나의 워킹 비자는 해를 넘겨 1월 17일이 되어서야 나왔다.

태국 측에서 요청한 서류를 기한보다 일찍 보내주었지만 처리는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아니다. 이 '빨리'라는 기준도 나의 기준일 뿐 그들의 입장에서는 평상시 속도였을수 있다.

태국 측에서는 자신들이 정한 일정에 따라서 움직였다.


타임라인을 보자면 이렇다.

8월 : 요청한 사진, 영문 이력서 등 제출

11월 : Letter of Intent 등 추가 요청 , 태국 비자 시스템 개편으로 일정 늘어질거라고 안내 옴

1월 : 태국어로 된 비자 신청 서류 등을 태국 e-visa 사이트에 제출

1월 17일 : 워킹비자 승인


이렇게 간단해 보이지만 그 사이에 무수한 이메일이 오갔다...

중간에서 연수 담당자 차장님이 정말 고생 많으셨다.

나와 차장님은 계속 "메일 또 보내야 하나? 왜 답이 안 오지?" 어리둥절했다.

메일을 너무 보내면 독촉하는 것 같아 짜증내진 않을지 결례가 되지 않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다 반갑게 메일이 오면 우리는 1시간 이내에, 늦어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답을 꼬박꼬박 보냈다.

이와 반대로 태국 측에서는 적어도 2주는 지나야 답이 오는 식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요?


태국 대사관에서 비자가 승인된 날로부터 딱 3개월동안 유효하다.

무엇보다, 워킹비자 승인이 떨어지면 한 달 이내에

태국으로 입국해서 메디컬 체크 등을 받아야 한다.

한 달이 넘어가면 비자가 유효하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갑자기 나는 2월 15일로 입국일자를 급히 결정하게 되었다.


물은 것에 대답 좀...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속도도 속도지만 물어본 것에 답이 오지 않았다.

근무할 팀이 여러 개인지 한 개인지 같은 고차원적인 질문으로는 넘어갈 수 조차 없었다.

장문의 메일에 여러 질문을 보내도 답변은 단순하게 오고 원하는 답은 피해서 왔다.


교환근무 프로그램을 다른 한국 기업과도 해봤다던데,

양식이나 절차를 공유해주면 한 번에 갔을 수월한 일도 반복해야했다.

예를 들어, Letter of Intent를 달라고 하는데 회사대회사의 문서인지 근무자와 회사간 문서인지

기본적인 서식 양식 등도 공유가 되지 않아 두번 일해야 했다.


그러나 태국 측은 전혀 답답하지 않아했다.

그 상황에 닥치니 다시 안내해주고 기다리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친절하니까 다 녹아내려요

설 연휴가 있어 비행기 티켓 잡기가 난항인 상황이었는데

근무 시작 일자를 2월 초까지도 확정해주지 않아서 결국 국제전화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메일로 주고 받을 때는 너무 답답하고 진행이 되는건지 회신도 잘 오지 않아 불안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하니 정말 친절하게 잘 알려주었다.

메일로만 인사했던 넛츠다와의 첫 통화!


나 : "안녕. 한국에서 전화거는 OOO이야! 16일에 근무 시작일 맞지?"

넛츠다 : "아니야! 메디컬 체크하는 날이고 18일에 근무 시작이야."

나 : "응? 나 16일 시작이라고 들어서 15일에 태국 도착하는데? 18일이 근무시작일이야?"

넛츠다 : "공식 근무 시작일은 18일이야!"

나 : "아니 그럼 나 16일에는 어디로 가? 너희 회사로 가면 돼?"

넛츠다 : "응 16일에 우리 회사로 오면 돼."

나 : "...??"

넛츠다 : "우리도 공휴일이 있어서, 내가 일자 정리해서 알려줄게."

나 : "메일 내가 보내놨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해서 미안해. 근데 한국은 긴 연휴라 비행기 티켓이 너무 없어서 전화할 수 밖에 없었어. 통화 끊고 시작일자를 정리하는 메일을 보내줄수 있어?"

넛츠다 : "응응 그럼 이해해. 바로 보내줄게!"


근무 종료일까지 물어보는 거도 너무 머나먼 단계의 질문이었다.

일단 가는 비행기표라도 살 수 있게 시작 일자를 통화로 확정했고

바로 비행기표와 숙박을 마무리했다. 그게 2월 3일이었다...!


태국식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듣기는 쉽지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따뜻한 에너지가 좋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메일도 곧바로 왔다.

이렇게 메일 보내줄 수 있었잖아... 바로 보내줬으면 좋았잖아....


그래도 밝고 친절한 목소리의 태국 직원과 통화를 하고나니

태국 생활이 한 껏 기대 되었다.


빨리빨리에서 사바이사바이로 넘어가봐

'사바이 사바이' 는 태국어로 편안함, 안락함, 행복을 뜻하며, 근심 걱정 없이 자족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태국인의 삶의 철학을 의미한다. "사바이 사바이"는 이러한 여유롭고 행복한 상태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스트레스 없이 느릿느릿한 삶의 방식을 뜻한다.


한국의 빨리빨리와는 정반대 급부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태국 생활을 완전히 시작해보지 않아 판단하기에 섣부르긴 하다.


그러나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서류를 주고 받는 업무를 같이 해보니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와는 달리,

미리 자료를 주어도 정해진 일자대로 움직이고 늘어져도 크게 조급해하지 않았다.


사바이사바이의 세계는 어떠한 형태로 갈지.

한국에서 업무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효율성'이라는 축을

비교적 덜 힘주고 살아가는 태국인들의 삶은 어떨지를 볼 기회다.


앞으로 딱 두 달. 걱정 버리고 고민 없이 사바이사바이의 세계로 넘어가보자.


6개월만에 받은 e-v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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