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의 첫 근무 전 맞이한 자유시간
근무하는 회사가 아무래도 중국계와 연관이 있나보다.
다른 태국 회사들은 정상 출근인데
내가 출근할 태국 회사는 오늘 단 하루 휴무다.
Happy Chinese New Year라며 곳곳에 빨간색의 축하 메시지가 거리에 즐비해있다.
오늘의 행선지는 주말에는 대기줄이 많아서 도저히 가기 힘든 곳으로 엄선했다.
태국친구 앎의 추천으로
에메랄드 사원과 궁, 거대한 누운 불상이 있는 왓포 사원,
일몰 때 보면 좋은 왓아룬 사원으로 코스를 짰다.
그 때는 몰랐다...!
이렇게 엄청난 스케쥴이 될지!
늦잠 때문에 11시 반이 되어야 숙소를 나섰다.
문이 열리면 푹 찌는 더운 바람이 온 몸을 에워싼다.
거리를 걸어가는 내내 쨍한 원색이 넘치는 태국 거리를 보니 카메라를 꺼내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
하필 오늘 우양산도 두고 오고, 선글라스는 아예 한국에 두고와서 땡볕과 정면승부를 했다.
쉽게 지치고 에너지가 왕왕 깎여나갔다.
에메랄드 사원으로 들어가니 높은 천고에 벽화가 가득했다.
마치 20대 초반에 유럽 성당을 처음 봤을 때 그 벅차오름과 비슷한 눈물이 맺혔다.
내가 좋아하는 탁 트인 높은 천장에 사방으로 가득찬 처음보는 태국풍 불교 그림과
웅장한 불상을 보자니 너무 아름다웠다.
얼마만인지 모른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순수하게 벅차 올라서 눈물이 찔끔 맺힌게!
사원 입구에 있던 태국 특유의 불교 그림도 정말 아름다웠다.
곳곳에 금박이 되어 있는데 어찌나 디테일한지 놀라웠다.
에메랄드 사원 내부에는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내부의 아름다움에 진득하게 집중하여 즐길 수 있었다.
어딜가나 무언가를 진심을 다해 비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끼여서 이리저리 고마움을 표하고 소원을 빌었다.
절로 경건해지게 만드는게 태국의 매력이다.
볼 건축물이 하도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다가 몇 번을 돌고 돌아 건물 앞에 섰는지 모른다.
여자 혼자 여행을 하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경계심이 덜하다.
식당 웨이팅을 하며 옆에 앉은 중년 여성 두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한 분은 멕시코, 한 분은 미국인이었다.
어제 태국 동료에 이어 정말 K-문화의 저력을 또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도 안 본 이도헌과 라미란 나온 드라마를 최애로 꼽고,
폭군의 세프, 다 이루어질지니 등을 술술 쏟아내며 내게 말해주었다.
나도 안 본 드라마도 다 섭렵한 그녀들에게 놀랐다.
어떻게 미국, 멕시코에 사는데 같이 방콕으로 여행을 올 수 있지 싶어 물었더니
두 분이 결혼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샌디에고에서 둘이 처음 만나서 결혼하여 지내다
최근에 은퇴를 했고 이를 기념하여 아시아로 첫 여행을 나선거라 했다.
은퇴해서 부럽다 라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속으로는 여성 두 분이라 결혼한 부부라는 선택지는 빼놓고 있었던 지라 놀랐다.
태국에 와서 놀란 또다른 포인트는 왓슨스나 드럭스토어를 갔을 때
트렌스젠더인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여장을 한 남자분 같은 분이
어느 누구보다 제스쳐는 여인과 다름없는 형태로 쉽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아 내가 정말 좁은 우물 안 개구리에 편견 덩어리였구나를 이틀만에 왕왕 느꼈다.
불과 이틀만에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을 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다.
식당 메뉴 중에 하나는 전혀 먹어보지 못한 타마칸 커리였고,
베스트셀러는 한국에서도 먹어본 캐슈넛 치킨 볶음이었다.
베스트셀러로 갈까 하다가 먹어본 적 없는 커리 음식을 주문했다.
타이스타일이라는 밥과 노른자를 더한 것도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딜이 듬뿍 올라가있고 고수도 있었다.
고수를 싫어해서 먹지말까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며
한 잎사귀를 떼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밥 위에 올라간 생마늘도 한국에선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곳이니 하며 맛보았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먹고 경험하도록 스스로를 둘 수 있는
완전한 이 환경이 아주 마음에 든다.
누워있는 거대한 불상으로 유명한 왓포 사원을 갔다.
생각보다 불상 외에도 볼거리가 많았지만
오후 3시 반쯤 도착한지라 더위가 절정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통 의상을 입고온 사람들과 음력 설날 관련 행사가 소란스레 열리고 있었다.
피곤함이 더해져갔다.
찾아보니 타이 마사지의 원조인 마사지 스쿨이 있다하여 갔는데 무려 2시간 대기였다.
평일에 이러면 대체 주말엔 어떤걸까...?
여러 불상 건물을 돌고돌다가 정말 몸이 녹아내릴 거 같았다.
급히 카페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라 구글 지도로 찾아보았다.
PORTS라는 인근의 카페를 찾아갔다.
마감까지 40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얼른 앉았다.
2층까지 카페 공간인듯 했는데, 에어컨이 가장 센 1층에 앉았다.
라떼를 한 모금 쭈욱 들이키니 좀 살 것 같았다.
얼굴을 보니 벌겋게 익어 있었다.
다리도 녹아내릴 거 같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왕궁은 여전히 긴팔, 긴바지를 고수하였다.
궁과 절을 두군데나 갔다오니 무언가를 더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야경 소등까지 얼마 남지 않은 왓아룬을 조금 볼까도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7:30에 영어 수업에 늦을듯하고
무엇보다 정말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방콕에서 이제 고작 2일차이고 왓아룬 야경 볼 기회가 없겠는가!
조금은 아쉽지만 내일 출근도 예정되어 있어 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MRT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코스를 추천해주었던 앎에게 고맙다고 연락했다.
그러자 그녀도 좋아하며 가면 좋을만한 여러 카페와 식당을 추천해주었다.
식료품 살만한 슈퍼가 주변에 없어서 고역이었는데
그랩으로 배달이 다 가능하다며 현지인 꿀팁도 알려주었다.
세세하게 이것저것 알려주니 현지 정착이 더 빨리 되는 듯 하다.
얼른 회사와 방콕 라이프가 조금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민트와 앎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이렇게 방콕에서 두 달 살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온건지!
10년도 더 전에 같이 독일 교환학생 시절에 같이 시간을 보내었던
소중한 친구들과 다시 연이 이어질 수 있었는지!
모든 것에 감사한 오늘 하루였다.
하루 마무리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남편과도 통화를 했다.
모두들 보고 싶고 좋은 기회를 응원해준만큼 많이 배우고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내일은 태국에서의 첫 출근날이다!
나 답게 너무 방방 뛰지 않되 차분하게 첫 시작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디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